박찬수 논설위원
유레카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의 하나는 에드워드 케네디(76) 상원의원의 등장이었다. 뇌암 수술 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면역력이 떨어졌으니 대중 앞에 나서지 말라는 의료진 만류를 뿌리치고 전당대회장 연단에 섰다. 그의 연설은 짧았지만 당원들은 열광했고 미지근하던 분위기는 화끈 달아올랐다.
민주당원들이 그에게 열광한 건, 투병 중인 원로 정치인의 깜짝 출현 때문만은 아니다. 케네디가의 후광 때문만도 아니다. 지난 수십년 흔들림 없이 민주당 색깔과 가치를 지키려 애쓴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감정이 더 컸다. 이런 점에서 <워싱턴 포스트>는 케네디를 ‘민주당의 상징’이라고 평했다.
2004년 대선에서 다시 패하자 민주당은 심한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당내에선 노선을 확 바꿔야 재집권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고개를 들었다. 대선 쟁점이었던 낙태 문제에서, 여성의 낙태권을 포기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케네디는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민주당의 미래’에 관한 의미 있는 연설을 했다. 그는 “민주당의 핵심 가치들을 더 굳건히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보험을 모든 시민에게 확대하려는 노력, 여성의 낙태권을 옹호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민주당을 색깔 없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정당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민주당은 공화당과 똑같아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그는 “나는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섰다”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 4년 전 미국 민주당과 비슷하다. 방향 없이 무기력하게 흔들리고 있다. 누가 민주당을 다잡아 다시 일으킬 것인가. 한국 민주당에도 케네디 같은 이가 필요한데, 그런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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