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나라당 의원을 만났더니 이런 말을 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서 4년 국회의원 임기 중 16분의 1이 지났다. 이 대통령은 임기의 10분의 1이 지난 셈이니, 얼마나 마음이 바쁠까.” 그렇다. 요즘 이 대통령 마음을 붙잡는 건 시간과의 싸움인 것 같다. 임기 초반의 금쪽같은 6개월을 허비했다는 아쉬움이 큰 탓일 것이다. 지난 6개월이 교훈이 되기보다는, ‘내가 괜히 주눅이 들었구나’라는 식의 회한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러니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지지율 상승이다. 한때 10%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이 요즘 30%까지 올랐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추석 지나면 40%를 넘을 거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명박 정권의 성공과 나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지 못하면 나는 결코 정치에 뛰어들 수 없다”고 말했다. 아마 청와대는 지지율 40%를 ‘성공 목표’로 삼는 모양인데, 유감스럽게도 그건 착시 현상에 따른 오산일 뿐이다.
1930년대부터 대통령 지지율 조사를 시작한 미국에선 보통 ‘40%’를 국정운영 실패를 가르는 기준으로 삼는다. 지지율(approval rating)이 40% 밑으로 떨어지면, 반대로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반대한다”는 ‘부정평가 비율’(disapproval rating)이 60%를 넘는다. 이건 정권이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는 뜻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밑으로 처음 떨어진 건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직후인 2005년 11월이었다. 그때부터 부시는 레임덕에 빠졌고, 지금까지 줄곧 30%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30% 지지율’에 기뻐하는 것은 10%였을 때를 생각했기 때문일 터인데, 이는 애초부터 비교가 잘못됐다. ‘10% 지지율’이 극히 비정상이었고, 이제 비로소 ‘정상적으로’ 국정운영을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것이다. 어제 보도된 <조선일보>·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60%를 넘는 국민들이 국정 방향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다고 대답한 건 의미심장하다. 청와대가 유심히 봐야 할 건 30%로 회복된 지지율이 아니라, 여전히 그 두 배가 넘는 국민들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내 갈 길을 가겠다며 강경한 보수 어젠다 정책들을 계속 밀어붙일 태세다. 촛불시위에 고개를 숙였던 데 대한 반작용인 듯싶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대통령이 많이 소심해졌다”고 했는데, 지나친 강경함과 소심함은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둘 다 자신감의 결여를 밑바닥에 깔고 있다.
이 대통령이 과감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걸 탓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건 이 대통령 자신의 페이스다. 마라톤에서 한번 페이스를 잃으면 다시 회복하긴 어렵다. 짐짓 강경한 어조를 쏟아내며 과도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건 이 대통령 본래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그가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 본선에서 서울·수도권의 압도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실용’이란 단어가 주는 유연한 이미지 덕이 컸다. 이념을 비롯해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일을 해 나갈 것이란 뜻이었다. 일종의 정치적 ‘크로스 오버’에 대한 기대다. 그러나 지금 이 대통령에게선 그런 유연함을 찾아볼 수 없다. 점점 더 경직돼 가는 모습을 본다. 이건 국민들이 기대했던 ‘이명박 스타일’이 아니다.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야 남은 4년6개월을 헤쳐나갈 수 있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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