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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60년!

등록 2008-06-01 20:21수정 2018-05-11 16:00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연일 계속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부르는 노랫말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된 지 올해로 꼭 60년, 그런데 왜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 제1조를 학교가 아닌 광장에서 외치는가?

대한민국에서 추방된 시절,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간 학교 담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 ‘자유·평등·우애’ 나는 대단한 발견이나 한 양 그 글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 이들은 긍정적 가치를 가르치는구나!” 잠시 감상에 빠졌던 것은 내가 다녔던 학교 담에 큼직한 글씨로 새겨져 있던 ‘반공·방첩’이 포개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삼색기가 상징하는 ‘자유·평등·우애’, 프랑스 공화국의 기본 이념을 공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한민국 공교육의 첫째 소명이 국민을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 형성하는 데 있듯이.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세뇌 수준으로 강조받는 것은 반공·방첩·안보·질서·국가경쟁력이지, 민주주의나 공화주의가 아니다. 그나마 반공·방첩은 사라지고 있지만 지금도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강조되는 것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 ‘비즈니스 프렌들리’다. 민주공화국이 배반당하고 있는 점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거쳐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별 차이가 없다.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역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긴 했지만 군주제를 물리치려고 싸운 역사적 경험이 없다. 오히려 군주가 없다는 것으로 공화국이 성취된 양 집단 착각에 빠져 공화국에 관한 변변한 책 한 권 읽지 않았고 토론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수천년 지속한 군주제, 그 지배이념인 강고한 신분질서와 기득권 체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투쟁 과정과 담론들을 우리는 조금도 공유하지 못한 것이다. 가령 자유와 평등 이념으로 신분질서를(질서 중에서 가장 무서운!) 극복한 역사적 경험을 통한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한다”는 근대공화국의 명제를 공유하지 못해, 질서와 안보 이념에 의한 국가보안법·집시법·노동악법 등으로 사회정의의 요구가 질식당하고 있다. 또한, 공화국의 어원인 ‘공적인 일’(res publica)이 말해주듯 나라는 ‘인민의 것’으로서 ‘공공성’과 연대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그것들은 의료·물·전기의 사기업화,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이명박 대운하, 학교 자율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증명하듯 사익 추구 권력집단의 ‘사적인 일’(res privata)로 포박당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서 칸트가 말한 ‘목적’이 돼 본 적이 없다. ‘위함·섬김’의 대상이 아닌, 언제나 지배집단의 사익 추구에 동원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관리·통제의 대상이었다. 애국주의는 공공성과 연대의 실현에 따라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의 위함을 받는 데서(가령 마이클 무어의 ‘식코’를 보라) 자발적으로 생기는 것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국민교육헌장, 국기에 대한 맹세, 국가 경쟁력 따위의 국가주의를 세뇌함으로써 쥐어짜내려 한다. 우리네 학교가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을 형성하는 대신 지금껏 해 온 일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나? 무엇을? 그들이 사익 추구의 강력한 도구로서 권력을 잃었다면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잃어버렸다. 60년 동안이나!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외쳐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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