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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수염 / 권귀순

등록 2008-05-26 19:35

유레카
왜 면도를 하지 않는가? “면도하는 시간을 합치면 한 해 열흘쯤 될 것이오. 그 시간을 벌어 혁명 구상에 쓰려 하오.” 이렇게 답한 카스트로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체 게바라, 호찌민, 트로츠키, 레닌, 엥겔스, 마르크스 등 좌파들의 초상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덥수룩한 수염이다. 19세기 초반만 해도 수염을 기르는 유행은 시민의 저항을 의미했다. 보수진영은 ‘민주주의 수염’이냐며 비꼬았고, 독일의 몇몇 공국들은 법으로 콧수염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좌파일지라도 권력자가 되면 턱이 매끈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토니 블레어(영국), 슈뢰더(독일), 파보 리포넨(핀란드), 구젠바우어(오스트리아), 특히 구젠바우어는 체 게바라 스타일을 추종하다 매끈남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털>의 지은이 다니엘라 마이어 교수(빈 아카데미)는 “권력자의 지위로 올라서면서 정치 이데올로기의 차별성이 사라져 갔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왜 면도를 하지 않는가? “나의 농사법은 잡초도 뽑지 않고 내버려두는 자연농법입니다. 조물주가 털을 왜 심어 놓았겠습니까. 자연스런 수염을 쇠붙이로 박박 긁는다는 게 내가 살아온 방식과 맞지 않아요.” (<미디어스> 인터뷰) 쇠고기 협상 국면에서 성난 민심의 우상으로 떠오른 ‘강달프’(수염 마법사) 강기갑 민노당 의원의 소신이다. 그에게 우리 축산 농민을 고사시키고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하면서까지 미국산 쇠고기 위험 부위를 들여오는 건 자연의 이치가 아닌 것이다. 불신의 정치에 데인 민심은 그를 ‘호통 기갑’, ‘일당백’이라 이르며 열광하고 있다. 그의 홈페이지에서 맞닥뜨리는 ‘섬김의 정치’란 말에선 껍데기를 느낄 수 없다. 농군으로서 농민운동가로서 국회의원으로서 그가 보여준 신념과 행동은 변함이 없었기에 그렇다. 의원회관에서 잠자고 직접 밥을 해먹는 소박한 정치인, 군림하는 권력자의 모습은 아니다. 변함 없는 턱수염이 그 징표랄까.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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