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유레카
1980년대 미국 보수주의의 시대를 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겐 ‘위대한 소통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에게 이런 수식어를 붙인 건 1976년 <뉴욕타임스>였다. 러셀 베이커는 칼럼에서 “로널드 레이건은 뛰어난 소통자(a great communicator)임에 틀림없다”고 썼다. 이 수식어는 1980년부터 8년간 레이건이 대통령을 지내면서 ‘위대한 소통자’(The Great Communicator)로 의미가 바뀌었다. 레이건만큼 국민과의 소통에 성공한 대통령은 찾기 힘들다는 뜻이다.
8년간의 민주당 집권을 무너뜨리고 2000년 조지 부시가 백악관에 입성하자, 미국 보수진영은 그에게 레이건처럼 ‘위대한 소통자’가 되길 기대했다. 기대는 쉽게 깨졌다. 집권 첫해에 레이건은 7번이나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서서 국민에게 직접 연설을 했지만, 부시는 단 두 차례만 텔레비전 연설을 했다. 레이건은 연설을 하기 전 메시지를 국민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참모들과 실전에 가까운 연습을 하면서 고민했다. 부시는 한두 사람 앞에서 프롬프터(자막기)를 읽는 연습만 잠깐 했다.
레이건은 2차 세계대전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노변정담식의 라디오 연설을 한 것을 본떠, 매주 토요일 아침 국민에게 직접 대통령의 생각을 밝히는 라디오 국정연설을 부활했다. 생방송이었다. 부시도 토요일마다 라디오 연설을 하지만, 하루 전에 미리 녹음을 한다. 청취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집계하지 않는다.
레이건의 대중연설 스타일과 기법은 수많은 정치인과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됐다. 그러나 레이건은 퇴임을 앞둔 1988년 연설에서 “나는 ‘위대한 소통자’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나를 남들보다 두드러지게 했던 건 스타일이나 말이 아니다. 바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연설이 국민의 가슴을 움직이려면 역시 진정성과 내용이 중요하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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