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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토지 / 권귀순

등록 2008-04-28 20:46

유레카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끝. 1994년 8월15일 새벽 두시, <토지>의 위대한 마침표는 찍어졌다. 4년여 공백 끝에 약 2년간 집필한 5부, 잉크 10병을 찍어낸 만년필이 육필원고 옆에 누웠다. 서희 모녀가 8·15 해방을 맞는 장면을 끝으로 작가를 옭아맨 굵은 사슬도 8월15일 툭 끊어져 나갔다. 26년 만이다. 1897년부터 1945년에 걸쳐 하동 평사리와 서울, 간도, 일본을 넘나들며 굽이쳐 흐르는 사이, 예순여덟, 박경리 선생의 머리칼에는 눈꽃이 내려앉았다.

집필 30여년 뒤, 문학적 상상력으로만 빚었던 작품의 현장을 처음 찾은 작가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고 한다.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장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이다. … 고난의 역정을 밟고 가는 수없는 무리.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라면 이상향을 꿈꾸고 지향하며 가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의 갈망이다.”(나남 2002년판 서문)

<토지>를 쓴 연유를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고 표현한 작가는 최참판댁을 둘러싼 700여명의 기구한 운명을 원고지 3만1200장에 담아내 독자들의 가슴을 얼룩덜룩하게 만들었다. <토지>의 운명 또한 기구해서 94년 솔출판사에서 총 16권으로 갈무리되기까지 8군데 지면을 전전하며 연재됐다. 피와 살의 옷을 입힌 역사는 드라마로도 만화로도 가지를 쳤다. 일본, 프랑스, 영국에서 번역본도 나왔다.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거부해온 박경리 선생이 의식불명에 빠졌다. 71년 한 차례 암과 싸우며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73년 서문) 써내려갔던 선생의 숭고한 작가정신이 눈자위를 붉게 만든다. 쾌차를 비는 네티즌의 물결에 댓글 한줄 보탠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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