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유레카
힐러리 클린턴이 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그의 앞날은 여전히 험난하다. 힐러리가 버락 오바마를 제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직을 손에 쥐리라 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를 뿌리 깊은 편견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당 경선은 미국민들이 성(sex)과 인종(race) 가운데 어느 것에 더 관대한가를 드러낸다는 주장이다.
2001년 존 투비 캘리포니아주립대학 교수팀은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일군의 실험 대상자들에게 각자 단어를 말하게 한 뒤 누가 그 단어를 말했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누가 어떤 단어를 말했는지는 기억 못하더라도, 흑인 또는 백인이 그 단어를 말했다는 건 대체로 기억했다. 인종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한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변수를 더하자 인종 선입견은 크게 약해졌다. 실험 대상자를 두 팀으로 나눠 다른 색깔의 유니폼을 입히자, 사람들은 인종보다는 유니폼 색깔을 훨씬 잘 기억했다. 그러나 성별 문제에선 달랐다. 사람들은 유니폼 색깔보다는 여성 또는 남성이 그 단어를 말했다는 걸 여전히 더 잘 기억했다. 존 투비 교수는 이런 결과를 두고 “인종 고정관념은 없앨 수 있지만,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은 없애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슷한 실험 결과는 여럿 있다. ‘뛰어난’ 흑인 의사를 대할 때 사람들은 그를 ‘흑인’보다는 ‘의사’로서 기억하지만, 여성 의사에 대해선 그렇지 않았다. 또다른 실험에선 여성들은 대체로 ‘똑똑하거나’ 아니면 ‘사람이 좋다’란 평가를 받지, ‘똑똑하면서도 사람이 좋다’란 평가는 좀처럼 받지 못했다. 힐러리가 오바마에 고전하는 걸 단지 이런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보다 훨씬 강하다는 건 심리학계에선 정설이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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