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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학교 자율화 뒤에 숨은 ‘독’ / 이종규

등록 2008-04-20 23:52

이종규/사회부문 교육팀장
이종규/사회부문 교육팀장
편집국에서
‘자율화’. 듣기에 참 달콤한 말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데 굳이 마다할 이

유가 없겠지요. 그런데 지난 한 주 ‘자율화’가 뭇매를 맞았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학교 자율화’ 얘기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15일 우열반 편성·0교시·심야 보충수업 등에 대한 규제를 푼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하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비판 보도’의 맨 앞 쪽에 <한겨레>가 서 있었습니다. <한겨레>는 발표가 난 다음날부터 연일 입시교육 강화 등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저희가 이처럼 이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이유는 ‘학교 자율화’라는 달콤한 열매 속에 너무 많은 독이 숨어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전봇대’를 뽑는 것이 ‘시대정신’으로 여겨지는 때라지만, 세상에는 뽑아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전봇대도 적지 않습니다. 이번에 교과부가 한꺼번에 뽑아낸 전봇대들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교과부의 학교 자율화 조처가 바꿔 놓을 학교 현장의 모습은 너무 암담했습니다.

새벽별을 보고 등교해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교문을 나서야 하는 중·고등학생들, 정규수업이 끝난 뒤 ‘학교 안 학원’에서 국·영·수·사·과 교과 보충수업을 듣는 초등학생들, 학급이 곧 학생의 ‘상대적 위치’를 말해주는 우열반 편성, 한 달이 멀다 하고 치러지는 사설 모의고사, 어린이신문 구독 의무화….

교과부의 지침은 이런 부작용을 막고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든 ‘보편적인 게임의 룰’에 해당합니다. 지침이 만들어지기까지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지침들을 없애려면 하나하나의 지침이 왜 만들어졌는지, 지침이 없어질 경우 과거의 폐단이 다시 나타날 우려는 없는지 등을 면밀하게 따져봤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과부의 학교 자율화 조처에는 이런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규제 혁파’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 급조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는 <한겨레>가 이번 조처에 날선 비판을 가한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학교 자율화 조처를 둘러싼 논란은 이념이 아니라 학생의 인권 및 행복추구권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 보수언론은 사설을 통해 학교 자율화에 대한 반대를 “일부 좌파 교육단체와 좌파 언론들의 공격”이라고 깎아내렸습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 직결된 문제에까지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용기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번 반대운동에는 중도적인 성격의 단체들도 전교조 등 ‘좌파’와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한국YMCA전국연맹은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은 무한 성적 경쟁을 조장해 청소년을 죽음의 길로 몰아가는 정책”이라고 비판했고, 좋은교사운동은 “(정부가)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도 버리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물론 학교에 자율성을 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학교 자치’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교사회·학부모회·학생회의 법제화와 학교운영위원회의 위상 강화, 교장 임용제도의 혁신, 교육과정에 대한 국가의 통제 완화 등이 예입니다. <한겨레>는 앞으로도 진정한 의미의 ‘자율화’가 학교 현장에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감시견’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이종규/사회부문 교육팀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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