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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출구조사의 아이러니

등록 2008-04-10 21:31수정 2008-04-11 00:29

박찬수/ 논설위원
박찬수/ 논설위원
유레카
총선 출구조사(exit poll)가 이번에 또 틀렸다고 야단이지만, 그래도 출구조사는 현대 선거 여론조사 기법 중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꼽힌다. 출구조사를 통해, 개표가 끝나기도 전에 당선자를 예측하는 게 가능해졌다.

출구조사가 선거에 도입된 건 우연이었다. 1964년 초, 미국 대통령선거의 예비선거(프라이머리)가 열린 메릴랜드주에서 면접조사를 담당하던 여성 루스 클라크는 집집마다 방문하며 “누구에게 투표하셨어요?”라고 묻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투표소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투표하고 나오는 유권자들에게 누굴 찍었는지 물으면 어떨까. 클라크는 곧바로 투표소로 달려갔다.

클라크는 메릴랜드 예비선거가 끝난 뒤 이 일을 여론조사기관 대표인 루이스 해리스에게 얘기했다. 해리스는 곧바로 이 기법의 독창성을 알아차렸고, 그해 6월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출구조사가 도입됐다. 당시엔 매우 원시적이었다. 투표소에서 나온 배리 골드워터 후보 지지자들은 파란 콩을, 넬슨 록펠러 후보 지지자들은 빨간 콩을 통 안에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그 뒤 출구조사에도 표본추출 방식이 도입됐고, 1980년대엔 투표 종료와 동시에 당선자를 예측하는 텔레비전 방송이 전파를 탔다.

클라크는 선거 여론조사의 혁명을 이뤄냈지만, 조지 갤럽이나 루이스 해리스와 같은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전력 때문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였다. 그의 남편 조지프는 미국 공산당 기관지 <데일리 워커>(Daily Worker)의 국제부문 에디터였다. 클라크 가족은 1950년 매카시즘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는 모스크바로 이주하기까지 했다. 클라크 부부는 1953년 미국으로 돌아온 뒤 직장을 얻기가 어려웠고, 클라크가 면접조사원으로 나선 것도 생계를 위해서였다.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여성이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상업화된 기법을 개발한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인 것 같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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