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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한국 정치의 비극 / 유종일

등록 2008-04-09 21:13수정 2008-04-10 14:42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제18대 총선 민심의 핵심은 역대 최저의 투표율인 것 같다. 이는 정치 무관심의 결과가 아니라, 도대체 찍어줄 사람이 없다는 항의의 표시다.

이변이 없는 한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고, 여기에 한나라당과 뿌리를 같이하는 세력들을 합한 범보수가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넘나들 전망이다. 한나라당이 펄펄 살아서 한국의 보수정치를 끌어가는 건 비극이다. 한나라당에도 훌륭한 분들이 있고 비례대표 1번 강명순씨를 비롯해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도대체 어떤 정당인가? 군사쿠데타, 무고한 시민 학살, 초대형 부정축재 … 그 끔찍했던 전두환 정권의 수족으로 만들어진 민정당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당 아니던가? 부정축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여소야대의 민심을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쿠데타로 깔아뭉갰던 민자당의 후예들 아닌가? 나라경제를 파탄시켜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의 고통과 수모를 겪게 했던 신한국당의 후신 아닌가? 차떼기 정당, 성희롱 정당 아닌가? 재벌 봐주기에 앞장서고, 부동산 투기를 방조하고, 특권과 반칙으로 얼룩진 정당 아닌가?

얼마 전 영국의 해리 왕자가 아프가니스탄의 전선에서 근무하던 것이 알려져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며칠 전에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매케인이 자신의 아들이 이라크 전선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을 선거운동에 이용하기는커녕 조용히 숨겨왔다는 <뉴욕 타임스>의 보도도 있었다. 우리의 보수는 어떤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를 일반 국민들보다도 무척 게을리해 온 분들이 앞서서 이끌어 간다. 잘못된 보수가 망해야 참된 보수가 자라날 텐데, 이제 다시 한나라당 중심의 보수가 강고해지니 걱정이다. 사회가 지나치게 집단주의나 국가주의로 흐르는 것을 막고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기능을 지켜내며, 사회복지가 과도해질 때 개인의 책임성 또한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세상이 어지럽게 변화의 물결에 쓸려갈 때 전통의 가치와 안정의 미덕을 옹호해 줄 보수. 이런 참된 보수는 언제 득세하려나.

개헌 저지선 운운하고 있는 진보의 상황은 더더욱 비극이다. 통합민주당을 진보라고 하기는 민망하지만 편의상 중도진보로 분류하고 이른바 진보 3당과 함께 범진보의 일원이라고 하자. 민심은 이번 총선에서 진보를 버렸다. 그러나 결코 한나라당이 좋아서 그런 선택을 한 건 아니다. 장관 인사 파동을 거치며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도 많이 떨어졌고, 공천 파동으로 한나라당 지지도도 크게 하락했다. 여론의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안정론보다 견제론이 힘을 받는 양상이었다. 문제는 진보 쪽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진보 3당은 군소정당화되어 도대체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고, 통합민주당은 도대체 뭘 하겠다는 정당인지 알 수가 없다. 통합민주당은 무뇌 정당 같다. 정책이 없고, 전략이 없고, 리더십이 없다. 경제는 어찌하고, 교육은 어쩌겠다는 건가?

무엇보다 반성이 없고 책임지는 모습이 없다. 개혁진보세력에게 10년간 정권을 맡겨준 국민들은 지난 대선을 포함해서 여러 차례 극도의 실망과 불만을 표출했다. 개혁과 진보에 대한 배신, 무능과 타락에 대한 심판이었다. 눈앞의 기득권만 챙기려는 자들에게 거듭된 경고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사조 피닉스는 생명이 다해 가면 스스로 몸을 태워 죽는다. 그러면 거기서 새로운 피닉스가 탄생한다. 한국의 진보여, 구차한 삶을 연명하려 들지 말고 몸을 태워 죽어라.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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