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신문의 역사는 신문에 대한 비난의 역사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근대 신문이 탄생한 이래 선정주의·상업주의·권력추종·사실왜곡 따위 신문의 악덕에 분노의 말을 뱉지 않는 사람은 식자 축에 끼지 못할 정도로 신문은 늘 욕을 먹었다. 19세기 작가 에밀 졸라(1840~1902)도 이 비난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졸라는 1880년 펴낸 비평집 <실험소설>에서 신랄한 어조로 파리 신문들의 행태를 비꼬았다. “진지한 문학에 지면을 할애하는 신문은 단 한 종도 없다. 모든 신문이 정치에 뛰어들어 온갖 불협화음을 내느라 여념이 없다. 절대 다수의 신문이 잘못 만들어졌고, 사람들을 지겹게 하고, 독자를 괴롭힌다. 만일 그 신문들이 정치 기사 소화불량으로 죽는다면, 만일 엘리제궁을 꿈꾸며 서로 아귀다툼을 벌어는 그 신문들이 수많은 독자에게 외면당한다면, 나는 정말로 행복할 것이다.” 이렇게 독설을 뿜었던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이 터졌을 때 반드레퓌스 선동을 규탄하는 <나는 고발한다>를 썼다. 그 선동의 앞머리에 프랑스 우익 신문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난받을 짓을 한다 해도 신문은 우리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사실의 수로이고 진실의 교량이다. <정신현상학>을 집필하던 때 게오르크 헤겔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조간 신문을 읽는 것은 현실주의자의 아침 기도다.” 심원한 관념철학을 구축해가던 그 학자에게 신문을 펼치는 일이야말로 세상과 만나 세상을 읽는 불가결의 기회이자 일과였던 것이다. <정신현상학>을 완성한 직후 헤겔은 <밤베르크신문> 편집장이 되어 1년 남짓 기사를 쓰고 신문을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다. 제52회 ‘신문의 날’(4월7일) 표어로 ‘세상을 읽어라, 신문을 펼쳐라’가 뽑혔다. 우리 신문들이 졸라의 욕설이 아닌 헤겔의 기도를 듣기를 바란다면 세상을 올바로 읽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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