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공천 끝마무리의 파벌싸움이 한창이지만 며칠 있으면 미우나 고우나 내 고장을 대표하고 나랏일을 맡아 볼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다. 잘 뽑으면 선량이지만 잘못하면 죽을 때도 기생집 울타리 밑에서 죽는다는 생각 없는 한량을 뽑을지도 모른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지역 발전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나라 지역 발전의 이념상에 대해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언어·인종의 차이에 따른 지역 분리주의 문제는 없으나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지역간 불균형 격차의 심화를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어떤 사태를 불러올지 장담할 수 없다. 밀라노를 축으로 잘사는 롬바르디아 지역 주민들의 분리독립 요구에 기대는 이탈리아 ‘북부동맹당’과 같은 정치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대학 시절 수업시간에 어떤 교수님께서 지리학의 실천적 목표는 ‘두루 살기 좋은 곳’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지금도 참으로 와 닿는 말이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진정한 지위라고 한다면, 살고 있는 입지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도록 지역 발전 전략을 만들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목표다.
우리나라의 지역 불균형 양태는 크게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 대도시와 농촌지역 격차, 산간·오지의 절대적 낙후지역 등과 같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오랜 전국적 쟁점이자 새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여부와 맞물려 있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문제가 가장 큰 문제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정책은 1964년 ‘대도시 인구집중방지책’을 시작으로 2006년 3차 ‘수도권 정비계획’ 수립까지 수많은 종합정책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초기에는 수도권 인구집중 억제 및 인구분산을 위한 직접적·물리적 규제가 주종을 이뤘고, 점차로 규제를 완화하고 유연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수도권이나 비수도권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사이 수도권은 더욱 성장해 저출산·고령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경제 잠재력이 큰 인구계층인 40~59살 인구는 수도권의 경우 2022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연령대의 수도권 인구는 2006년 644만명(전국 대비 48.3%)에서 2022년 882만명(52.7%)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때문에 혹자는 한국의 10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수도권 규제정책을 계속 시행해 왔지만 수도권 집중은 더욱 심화됐다고 냉소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의 길, 더불어 발전하는 길은 없는 것일까? 경쟁이 치열한 세계화 시대 그나마 경쟁력을 갖춘 수도권이라도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전략으로 나아가자는 일방적인 수도권 규제완화 주장이나 그 반대 주장 모두 현재 상황으로는 타협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나의 방안이 중앙정부 주도가 아니라 수도권처럼 잘사는 지역에서 균형발전기금을 직접 조성해 사정이 좋지 못한 지역으로 재정 지원하는 수평적 지방재정 조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시행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독일·스웨덴·프랑스 등도 수평적 재정조정제도를 도입하고 있고, 영국의 경우도 비주거용부동산세를 국세로 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형평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단순한 수도권 규제완화가 아니라 규제조정 등에 따른 이익을 바탕으로 수평적 지역균형기금을 조성해 ‘실질’적인 재정지원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말만 번지르르한 균형발전 전략이나 일방적인 규제완화 ‘외침’보다는 나을 것이다.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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