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유레카
“다선이 죄냐? 다선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제하는 게 말이 되나.”
최근 공천에서 탈락한 여야 중진의원들의 볼멘소리다. 이미 지역구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는데, 3선 또는 4선이라는 이유만으로 탈락시키는 게 정당하냐는 항변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다선 의원의 재출마를 막자는 주장엔 나름의 논리적·현실적 근거가 있다. 이미 미국에선 의회 의원의 연임을 금지하자는 운동이 세를 얻고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3선 금지 규정이 입법화된 것은 1951년이었다. 30~4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4선을 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헌법 수정이 이뤄졌다. 주지사의 경우엔 미국 건국 직후부터 연임(3연속 재임) 제한 전통이 확립됐다. 장기 집권하면 이익집단과 결탁하기 쉽고, 유권자들과 멀어져 독단적인 행정을 펴기 쉽다는 판단에서였다. 미국의 헌법 수정 이후 대통령을 비롯한 선출직 고위직의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은 전세계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은 연임을 할 수 없고, 지방자치단체장은 3연임까지만 허용된다.
최근 들어 미국에선 연임 제한 규정을 입법부 의원으로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90년 이후 미국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플로리다 등 22개 주에서 주의회 의원의 임기 제한 규정이 도입됐다. 대개 임기 2년인 하원의원은 3연임(총 6년)까지, 임기 4년의 상원의원은 재선(총 8년)까지만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의원 임기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선 의원일수록 재선율이 훨씬 높다는 데 근거한다. 쉽게 당선된다면 그만큼 쉽게 유권자들의 뜻과 멀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연방의회 의원으로까지 연임 금지 규정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제동이 걸린 상태다. 그러자 케이토연구소 등은 헌법을 개정하자는 운동을 펴고 있다. 언젠가는 국회의원들의 연임 금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날이 올지 모른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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