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르포작가
삶의창
다섯 여성이 글을 써서 책을 냈다. 제목은 〈좋고도 나쁜 세상이지요〉다. 나이가 50, 60대인 이들은 몇 해 전만 해도 가슴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거리에 무수한 간판과 버스, 지하철 노선은 풀 수 없는 암호였다. 은행이나 동사무소에 가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그림책을 펼쳐 손녀, 손자에게 읽어주는 일은 꿈이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식들과 고마웠던 사람들한테 편지 한 장 쓰지 못해 마음 아팠던 이들이다. 글 모르는 사람(비문해자)으로 살아야 했던 긴 시간.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그리고 어찌 이들 탓이겠는가. 이 ‘비문해 여성들의 글모음집’을 엮은 남부교육센터가 책 여는 글에 썼듯이, 전쟁과 가난, 그리고 여성에 대한 차별로 얼룩진 우리 역사의 한편에는 늘 비문해자들이 있었다.
지난주 토요일, 남부교육센터가 자리잡은 서울 난곡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찻집에 서른 명 남짓 모였다. 한글교실에서 3~6년 동안 공부한 다섯 사람이 차례로 나와 글을 낭송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쓴 글을 읽는 건 처음일 게다. 엄마를 따라온 어린아이가 “할머니 잘해요!” 힘을 북돋아주었다. 다 읽고 나서 “아유, 떨려요”라며 작게 숨을 내쉬는 이들한테 사람들은 아낌없이 손뼉을 쳤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온 이들에게 교육센터 대표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이들이 발표한 글은 그동안 기록하지 못하고,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였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최혜자씨는, 자신도 어리면서 더 어린 조카들을 차례로 업어 키우며 봄이면 나물 캐러 다니고, 가을이면 벼 훑으러 다녔다. 김정순씨가 쓴 글에는 난곡에서 산 42년이 새겨졌다. 비가 많이 와서 산사태가 난 일, 연탄·과일장사 하며 살아온 일, 지금은 철거되어 버린 가난한 달동네 이웃들의 고단한 삶이 펼쳐졌다. 김성순씨는 11살 때 조개 잡으러 갔다가 들어오는 바닷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친구에게 마흔 세 해 만에 편지를 썼다. 고향이 전남 화순인 김금남씨 글에는 1980년 5월 광주가 그려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집에 가는데 무수한 검문을 당했다. 장례식 날에는 탱크와 마주쳐 상여를 내려놓아야 했다. 총을 멘 군인들을 보았다. 그이는 글 끝에 이렇게 썼다.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그 부모들은 오월이 되면 죽은 자식이 생각나겠다고 생각해 봤다. 나는 오월 친정아버지 제사지내면 그날이 생각난다.”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글을 배워 자기가 살아온 세상을 쓴다면 뭉텅 잘려나간 가난한 사람들의 역사가 되살아날 게다.
조정숙씨는 낭송하다가 끝내 울었다. 함께 공부하는 제일 나이 많은 언니한테 쓴 편지를 읽을 때였다. “선배님은 선생님하고 받아쓰기 할 때마다 먼저 쓰시고 저희한테 맞춰 주신 것도 다 알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희한테 양보해 주신 것 정말 잊지 못할 겁니다. 선배님이 양보해 주신 덕분에 더 잘할 수 있었답니다. … 저한테 마음을 써주신 것도 정말 고맙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건 이렇게 서로 배려하고, 마음을 나누는 게 아닐까. 학생들이 서로 배우듯이 함께 공부한 젊은 선생들도 나이든 학생들한테서 배운 게 많을 거다.
삶을 향한 읽고 쓰기, 배우기. 어쩌면 한 사람에게는 혁명과 같은 일이리라. 이 일을 한 남부교육센터는 1973년 관악 청소년 실업학교로 시작했다. 남부고등공민학교, 남부야학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역주민들과 함께 민중교육을 일궜다. 찻집에 조용히 노래가 울려 퍼졌다.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참, 이 책은 서점에서는 찾을 수 없다. 남부교육센터(02-855-2550)에 있다.
박수정/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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