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정치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오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합니다. 새 정부는 스스로를 아무런 수식 없이 ‘이명박 정부’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책임감과 자신감이 묻어나는 표현입니다. 지난 대선의 압도적 표차가 보여주듯, 새 정부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큽니다. 그토록 건강하신 이 대통령이 얼마 전엔 코피를 흘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대통령의 어깨에 드리워진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듯합니다.
<한겨레>가 22일치 1면 머릿기사로 새 내각의 재산 상황을 분석하는 기사를 싣자,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 인사는 정치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정권 교체기에 인사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보안을 유지하면서 후보자들의 개인 정보를 완전히 스크린할 시스템이 없다. 검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겨레가 이런 점을 감안해 달라.”
또다른 한 핵심 인사는 “각료 후보자를 처음 6배수로 뽑은 뒤 3배수로 압축했는데, 개략적인 검증단계에서 이미 50~60%가 떨어져나갔다. 50살 이상 우리 사회 지도층의 살아온 과정과 (요즘 국민이 요구하는) 도덕 기준 사이에 너무 괴리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문제삼는 건 지나치다”고 말했습니다. <한겨레>도 재산 논란 보도에서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한겨레가 과다한 재산 자체를 문제삼고 너무 비판을 위한 비판에 치우친 점이 있었다면, 이에 대한 지적은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저희가 걱정하는 더 큰 문제는, 새 정부의 내각이 ‘강남 부자 각료들’로만 채워질 때 과연 서민과 중산층의 아픔과 기대를 제대로 헤아리겠느냐는 우려입니다.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서울 서초동에 오피스텔을 가진 게 투기 목적이 아니라며 “유방암 검사에서 암이 아니라고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며 사줬다”고 말했습니다. 암이 아니란 판정을 받은 게 기쁜 일임엔 틀림없지만, 그걸 기념해서 수억원짜리 오피스텔을 사주는 계층의 사람들이 서민들의 아픔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그런 내각에 서민의 목소리를, 영세 자영업자의 바람을, 노동자와 농민의 심정을 전달해야 합니다. <한겨레>가 그런 일을 하겠습니다. <한겨레>는 이명박 정부를 도울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내부에서, 또는 주변에서 듣지 못하는 소리를 전해주는 방식으로 새 정부를 도울 것입니다. 그것은 ‘조언’일 수도 있고, ‘비판’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괜히 트집 잡는 일’로 비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이동관 대변인은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능력과 국가관”이라고 말했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됐지 재산이 뭐 그리 중요한가.’ 첫 내각을 짤 때 아마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이랬을 것입니다. 일의 효율성과 결과를 중시하는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새 내각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선에서 나타난 ‘지역 편중’ 논란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능력 위주로 사람을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이 당선인 쪽 설명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차를 차근차근 밟는 것, 그리고 효율 못지않게 타협과 통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 정부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을 <한겨레>가 짚어내겠습니다. 세심하게 이명박 정부를 지켜보면서 새 정부가 놓치는 부분을 걸러내겠습니다. 이 대통령으로선 때론 껄끄러울 수 있겠지만,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습니다.
박찬수/정치부문 편집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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