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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사상누각’의 사회 / 박창식

등록 2008-02-17 20:02수정 2008-02-17 20:05

박창식/문화부문 편집장
박창식/문화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숭례문에 불이 난 지난 10일 밤, 신문사 편집국도 불이 났습니다. 평소 같으면 조용히 흘러갈 일요일 밤, 게다가 설 연휴 마지막날에 ‘국보 제1호 전소’라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초대형 사건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애초 불이 곧바로 꺼진 것으로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기에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퇴근해 집으로 가던 사회부 기자들은 다시 발길을 돌려 편집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게다가 마감시간마저 촉박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신문 1면과 2면에 걸쳐 ‘숭례문 부고기사’를 전했지만,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마감시간 제약 때문에 일부 지역 독자께는 화재 전모를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의 편집회의는 침통한 분위기에서 후속기사 방향을 놓고 다양한 토의가 이뤄졌습니다. 국민적 상실감 문제, 관리 부실 및 화재 진압 실패 책임, 복원 원칙과 방법, 신구 권력 교체기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미묘한 긴장감 등을 두고 집중적인 토의를 했습니다.

그날의 토론에다 현장 취재를 더한 것이 12일치 1면 머릿기사로 다룬 “문화재 보호 부실 … 국민 가슴도 무너졌다”는 기획기사였습니다. 숭례문 앞 수문장 교대식 같은 보여주기 행사에 많은 예산을 들이면서도, 정작 경비·방재 대책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현실을 집중조명한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문화재를 시민 곁으로 돌려주는 문화재 개방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기본 소홀’이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지요.

그런 와중에 이명박 당선인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잇달아 “이른 시일 안에 복원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에 저희는 13일치 1면 머리로 “또 빨리빨리인가 … 졸속복원 안된다”란 기사를 올렸습니다. 숭례문을 한시바삐 복원해 국민들의 구멍뚫린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원사업마저도 자칫 속도주의에 매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게다가 숭례문 복원을 위해 국민성금을 모금을 제안했다는 이 당선인의 발표는 저희들의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숭례문 화재 사고는 이제 아무리 땅을 치고 후회해도 엎어진 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후대책마저 서둘러서는 또다른 불행이 잉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꼼꼼하게 책임 소재를 가리고, 완벽한 개선책을 찾고, 복원도 제대로 해 보자는 게 저희들의 생각입니다. “숭례문 복원, 50년 걸린 ‘일본 금각사’에서 배우자”는 기사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 놓여 있습니다.

만사를 서두르지 말고 꼼꼼히 하자는 말은 너무나 당연해 진부하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는 이런 당위성이 잘 실현되지 않는 게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건이 나면 온통 아우성을 치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는 ‘냄비 근성’도 곧잘 한국인의 단점으로 거론됩니다. 여기엔 언론도 책임을 모면할 수 없습니다. 이런 반성 위에서 <한겨레>는 ‘600년 역사’의 기억이 제대로 보존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어쨌든 숭례문과 관련한 모금제안은 철회됐습니다. 복원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듯합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화재 피해가 애초 걱정했던 것보다는 적고, 쓸 만한 재료들도 제법 남아 있다는 정밀 현장조사 결과 소식은 불행 중에도 한가닥 위안을 줍니다.

박창식/문화부문 편집장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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