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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10만원짜리 목욕 / 박경철

등록 2008-02-15 19:18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삶의창
상호씨는 말 그대로 효자다. 중풍을 앓는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면서부터 상호씨는 매일 밤 어머니 곁에서 잠을 잤다. 낮에는 직장일로 어머니 간호를 간병인에게 맡기지만 퇴근하면 그 길로 병원으로 간다. 벌써 2년이나 계속된 일이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지만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오직 상호씨 몫이다. 안 그래도 남자 치고 몸집이 왜소한 상호씨가 그렇게 긴 간병을 하는 바람에, 얼굴이 거의 반쪽이 되다시피 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상호씨가 이러다가는 아예 장가도 못 갈까 주변 사람들의 걱정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걱정하시는 어머니였다. 더구나 어머니께 최근 가벼운 치매증상이 생기고부터는 영 좌불안석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가끔 휴지를 둘둘 말아 김밥이라고 내밀어도 “아이구 이거 맛있겠네” 하고, 어머니 어깨를 부축해서 복도를 걷던 중에 선 채로 실례를 해도 “아이구 울 엄마 시원하겠네” 하며 환한 웃음을 짓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있지도 않은 며느리를 찾으실 때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상호씨의 지극한 효성은 늘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뿐 아니다. 그는 태생이 선한 사람이었다. 낮에 어머니를 보살피는 간병인 아주머니한테 늘 깍듯했고, 옆 침대에 누운 다른 할머니들에게도 마치 친아들인 양 살갑게 대했다.

사실 굳이 그가 밤에 어머니를 늘 지켜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매일 어머니 곁을 지키는 이유가 있다. 보호자가 없으면 주무시는 어머니의 팔다리를 붕대로 침대에 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매기가 있는 어머니가 혹시라도 밤에 잠을 깰 때 있을지 모를 사고를 막느라 병원에서 내린 조처였다. 그는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밤에 어머니도 보호하고, 다른 환자들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도록 어머니 곁의 작은 보조침대에서 매일 잠을 잤다. 그게 벌써 일년이 넘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 설 전날 간병인 아주머니께 “아주머니 저, 제가 십만원을 따로 드릴테니 다른 아주머니 한 분하고 같이 설 전에 우리 어머니 목욕 좀 시켜주세요” 하고 부탁을 드렸다.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소독 거즈로 몸을 자주 닦아드리긴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목욕과는 다르다. 또 그가 주말에 한번씩 병원 샤워실에서 어머니 목욕을 시켜드리긴 하지만, 샤워실에서 하는 간단한 목욕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간병인 두 분께 부탁해서 큰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어머니 몸을 깨끗이 씻겨 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간병인 아주머니들 말로는 하도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제대로 씻으셔서 그런지,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할 수 없어하시더고 했다. 정말 오랜만에 고운 모습으로 침대에 누우신 어머니의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상호씨는 준비해 온 한복을 어머니 머리맡에 두고, 머리를 빗겨드리고, 오랜만에 맑은 정신을 찾은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울 엄마. 올해도 병원에서 세배 받게 생겼네. 이제 얼른 나아서 내년에는 세배도 집에서 하고, 차례도 집에서 모십시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상호씨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직 주무시는 어머니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다. 한참 뒤 한복을 입혀드리려 상호씨가 다시 병실로 돌아갔을 때, 어머니가 다시는 깨지 않을 깊은 잠을 자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호씨 어머니는 설날 아침, 착한 아들이 세배도 올리기 전에 그렇게 훌훌 아버지 곁으로 떠나가셨다.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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