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르포작가
삶의창
엊그제였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다섯시 무렵이었다. 잠시라도 주머니에서 손을 빼면 금방 얼음장이 되는 날이었다. 명동성당 들머리, 찻길 맞은편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다. 스물에서 서른 사이일까. 사람들이 찬 길바닥에 앉았다. 얇은 깔개를 깔았지만, 더러는 옷을 단단히 여미고, 모자도 쓰고, 목도리도 다시 매고, 가방에서 무릎담요를 꺼내기도 했지만 쉽게 이길 수 있는 추위가 아니었다.
그 찬바닥에 앉아 노란빛깔 펼침막을 들었다. “시민 여러분! 저희를 도와주셔요!”, “저희는 하루빨리 일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얇은 천이 추워 보였다. ‘도와주셔요’는 ‘투쟁’이나 ‘연대’보다는 낯설었지만 절실해 보였다. 붓에 빨간색, 검은색 페인트를 묻혀 쓰면서 어느 한 글자 허투루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작게 쓴 ‘뉴코아 노동조합’.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었다. 추석을 넘기고 해를 넘기고 설을 앞두었다. 누군들 이리 긴 시간을 거리에서 싸우고 싶을까. 누구도 이리 긴 시간을 생각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러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잊고 사는 시간. 아직도 싸우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어떻게들 그 시간을 나는지 몰라도 사는 데는 지장 없는, 당장은 ‘나’와 연결되지 않는 시간. 어쩌다 한번 마음 불편함도 금세 잊히는 시간.
말도 노래도 구호도 없이 뉴코아 노동자들은 겨울 한가운데 버티고 앉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둘레가 어둑하다. 한가하던 길이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시각은 달랐을 테지만 뉴코아 노동자들한테도 출퇴근하던 일상이 있었다. 지금은 빼앗긴 일상. 불안하고 차별 가득한 일상을 바꾸러 나섰지만 아직 일하던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현장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어려워진다면 그만큼 이 사회는 꿈꾸기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어느새 사람들이 일어났다. 더는 앉지 않고 일어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 낫다. 촛불을 켰다. 누군가 자신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덜덜 떨면서 들어선지 다른 말은 까먹고 저 말만 떠오른다.
저녁 일곱시, 광화문 교보문고 길에도 촛불을 든 사람들이 있었다. ‘단속추방 중단! 출입국관리법 개악 저지!’를 외치는 사람들이었다. 이주노동자와 인권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한 달 넘게 농성 중이라고 한다. 나누어준 유인물에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어떤 내용인지 나왔다. “이 법안에, 출입국직원들은 외국인처럼 보이면 누구나 불심검문을 할 수 있고, 이를 거부하면 현행범으로 연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장도 없이 공장이나 기숙사 등을 수시로 들어가 조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개악안에는 난민신청을 더 어렵게 만들고, 출입국시 (내외국인 모두) 생체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근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날 아침 신문에도 불법체류 단속을 피하다 8층에서 뛰어내려 숨진 한 이주노동자 소식이 실렸다. ‘단속’이라는 낱말을 읽는데 자꾸 ‘살인’이 떠올랐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데, 다 소중한데, ‘생명’은 어떻게든 살려고 애쓴다는데, 사회는 사람들을 낭떠러지로 몰아세운다. “죽거나 다치거나 병들거나 아프거나 ….”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이 한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놓인 현실을 이보다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시청 앞 화려한 불빛으로 꾸며놓은 세상을 가운데 두고 저쪽과 이쪽에 촛불을 든 사람들이 있다. 그이들에게 절실한 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것 아닐까. 가진자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와 인권, 노동권 말이다.
박수정/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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