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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한겨레가 실패했다? / 박찬수

등록 2007-12-23 19:08수정 2007-12-23 21:38

박찬수/정치부문 편집장
박찬수/정치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3년 전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취재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접전지역인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열린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유세엔 10만명 가까운 사람이 운집했습니다. 유세장의 환호와 열기도 대단했습니다. 선거 초반, 9·11 테러의 짙은 그늘 속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손쉬운 승리를 점치던 분위기와는 딴판이었습니다. 2004년 미국 대선은 결국 케리의 패배로 끝났지만, 선거 막판 숨가쁜 접전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뜨거운 열정은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올해 우리 대선을 지켜보면서 2004년 미국 대선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나라 대선의 판세도 일찌감치 굳어졌습니다. 미국과 다른 건, 이런 판세가 투표일까지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유권자들의 뜨거운 열기마저 실종됨으로써 정말로 맥빠진 선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지난 19일 저녁,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한나라당 의원에게 축하 전화를 했습니다. 그 의원은 “고맙다”고 하면서, “<한겨레>가 비비케이 문제를 계속 물고늘어졌지만 결국 실패했네”라고 하더군요. 저는 “우리가 그 사안을 계속 다룬 건, 이명박 후보의 이력에서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취재해 시비를 가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겨레>가 올해 대선 보도를 시작하면서 정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유권자들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손잡고 국내 언론에선 처음으로 유권자들이 직접 참여해 후보 공약을 평가하는 ‘100인 유권자위원회’를 만든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비비케이 의혹을 비롯한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에 대한 집요한(?) 추적 검증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일부 호사가들의 분석처럼, 누구의 당선을 막거나, 당선되더라도 발목을 잡겠다는 얕은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후보를 둘러싼 의문이 있으면 남김없이 보도해 유권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선거보도에 임하는 언론의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2004년 미국 대선 당시 최대 쟁점 중 하나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군복무 경력이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하지 않고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으로 복무한 게 청탁에 의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혹이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이 사안에 대해 몇 달이나 끊이지 않고 추적보도를 하더군요.

<한겨레>는 이번 선거 이후에도 유권자를 위한 감시자의 구실을 계속할 것입니다. 곧 등장할 ‘이명박 정부’를 <한겨레> 시각에서 분석하고, 이명박 정부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지향점은 제대로 된 것인지를 면밀히 진단할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의 ‘압승’을 놓고 일부 언론에선 ‘진보의 몰락’이란 해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를 과연 ‘진보 가치의 패배’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한겨레>는 여러 기획기사를 통해 심층적으로 짚어볼 계획입니다. 진보개혁 세력이 반성해야 할 부분에 대해선 아픈 지적을 서슴지 않겠습니다.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 듯합니다. 언론들이 각자 자기 입맛에 따라 진실을 재단했다는 매서운 지적입니다. 저희도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뒤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새삼 각오를 다지고자 합니다. 언제나 독자와 진실의 편에 서는 언론, 시류에 휩쓸리는 언론이 아니라 의연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의 길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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