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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고차방정식보다 어려운 후보 순서 표기법 / 박찬수

등록 2007-12-02 18:48

박찬수 정치편집장
박찬수 정치편집장
편집국에서
“그건 너무 자의적인 거 아닌가요?”

지난주 대통령후보 등록이 끝난 직후 어느 당 관계자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한겨레>의 후보 표기 순서 기준을 설명하자 이 관계자가 보인 반응입니다. 불만이 가득 밴 목소리였습니다.

<한겨레>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뒤 대통령후보 표기 순서를 ‘이명박-정동영-이회창-문국현-권영길-이인제 후보’ 순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편집회의에서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선거에서 후보 표기 순서를 놓고 이처럼 곤혹스러운 건 처음입니다. 과거 대선에선 없었던 일입니다.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선 여야의 양강 구도가 기본이고 유력 후보 사이의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아, 기호 순서로 후보 이름을 표기하는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습니다.

이번엔 상황이 다릅니다. 기호 순으로 후보 이름을 표기하면 원내 의석수에 따라 정동영(대통합민주신당)-이명박(한나라당)-권영길(민주노동당)-이인제(민주당)-심대평(국민중심당)-문국현(창조한국당) …, 이런 순서입니다. 여론조사 지지율 2위를 달리는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기호 12번으로 맨 마지막에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빅3’에 이어 지지율 4위인 문국현 후보 역시 권영길·이인제·심대평 세 후보 뒤로 밀리게 됩니다. 유권자들의 관심과 표기 순서가 영 불일치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대다수 신문들은 여론조사 지지율을 기준으로 후보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지율 순서대로 하면, ‘이명박-이회창-정동영-문국현-권영길-이인제…’ 순입니다. 하지만 지지율만을 기준으로 후보 표기 순서를 정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지율이야말로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근본적 모순을 제쳐놓고도 문제는 있습니다. 현재 이명박 후보와 다른 후보는 지지율 격차가 워낙 크니까 그렇다 쳐도, 이회창 무소속 후보와 정동영 통합신당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겨우 4∼5%포인트 정도입니다. 저희는 고민 끝에 원내 제1당 후보이자 사실상의 여당 후보랄 수 있는 정동영 후보보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먼저 표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 후보 지지율을 기준으로 하되, 원내 의석수와 여야 대표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명박-정동영-이회창-문국현-권영길-이인제 …’ 순서로 하기로 정한 것입니다.

몇몇 정당에선 “방송사들은 기호 순으로 후보를 표기하는데 왜 <한겨레>는 그 기준을 따르지 않나”라고 이의를 제기해 왔습니다. 방송사들은 ‘정동영-이명박-이회창-권영길-이인제-문국현’ 순으로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사 역시 ‘순수 기호 순서’는 아닙니다. 지지율이 높은 이회창 후보(기호 12번)는 무소속인데도 세번째로 배치돼 있습니다. 방송사들도 나름의 고민을 한 결과일 것입니다.

미국에선 언론들이 대체로 집권당 후보의 이름을 기사에 먼저 씁니다. 2004년 <뉴욕타임스>의 여론조사 기사를 보면, 조지 부시 대통령-존 케리 민주당 후보 순서였고, 2000년엔 앨 고어 부통령-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 순서였습니다. 공화-민주 양당 체제가 뿌리를 내렸고 정권을 주고받는 게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원칙이 정해졌을 겁니다.

올해 우리 대선에선 ‘집권당 후보’가 없습니다. 여기에 예상치 않은 무소속 후보가 출현해 지지율 2위로 뛰어올랐습니다. 후보 표기 순서를 정하는 게 유난히 힘든 건, 정당정치가 취약하고 선거 구도가 극히 불확실한 우리 정치 현실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합니다.

박찬수 정치편집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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