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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삼성, ‘고해성사’부터 하라 / 정석구

등록 2007-11-29 18:04수정 2007-11-30 11:40

정석구/경제부문 선임기자
정석구/경제부문 선임기자
한겨레프리즘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차명계좌’를 공개한 지 꼭 한 달이 지났다. 당시로서는 한 개인의 의혹 제기 수준이었지만 한 달 만에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삼성이 보여준 반응들을 보면 여전히 실망스럽다. 이번 사건을 삼성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그럴 가능성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제단은 첫 기자회견에서 “재벌이 온 사회를 장악하고 흔드는 이 현실은 경제정의 질서와 민주주의의 근본을 위태롭게 하는 불의이며 새로운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제2의 민주주의 운동, 곧 경제정의 민주주의 운동을 펼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김 변호사의 차명계좌가 공개되자 삼성은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톱 밑에 낀 때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 김 변호사의 도덕성을 거론하며 그를 파렴치범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삼성의 비리가 추가로 드러나자 이번에는 진실 공방 차원으로 몰아갔다.

김 변호사가 밝힌 각종 비리의 사실 여부는 물론 중요하다.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철저히 밝혀낸 뒤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삼성이나 김 변호사 모두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삼성의 비리를 들춰내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삼성이 투명기업으로 거듭나고, 자본에 의해 왜곡된 우리 사회가 본모습을 찾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성이 우리 사회를 돈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오만한 인식부터 버려야 한다.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업이 국가기관이나 언론 등 공적 영역까지 장악하려는 것은 사제단의 지적대로 ‘불의이고 폭력’이다. 그런데도 삼성은 막강한 자본을 이용해 이를 당연시해 왔다. 그 결과,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자본의 장악력은 높아지고 민주주의는 후퇴됐다. 이제 삼성은 기업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인적 청산도 필요하다. 삼성그룹의 한가운데는 늘 이건희 회장의 가신이라 일컬어지는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이나 김인주 차장 등이 있었다. 10여년 이상 이 회장의 지근거리에 있으면서 사실상 삼성그룹을 이끌어왔다. 삼성을 이만큼 키워온 공로도 있지만, 삼성을 비정상적인 기업으로 만들어오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 책임을 질 때가 됐다.

전략기획실이라는 조직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과 계열사 사장단, 그리고 이 둘을 묶어주는 전략기획실이라는 삼두마차에 의해 꾸려져 왔다. 전략기획실이 삼성 성장의 견인차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체제가 과연 시대의 흐름에 맞는지를 재점검해봐야 한다.

이재용씨에게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한 것은 두고두고 삼성을 괴롭히는 ‘원죄’이다. 이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 없이는 삼성 문제가 주기적으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편법 승계 과정에서 저질러진 각종 불법, 편법 행위에 대한 진정한 ‘고해성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런 고백과 이에 연루된 인사들의 처벌 없이는 편법 승계 문제 해결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삼성도 그동안 쌓인 문제들을 제대로 털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단지 하나하나의 비리들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국내 최대 기업으로서의 삼성이 더욱 책임 있고, 투명한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다. 삼성에게는 머뭇거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정석구/경제부문 선임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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