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은 철학을 두고 ‘개념으로 포착한 자기 시대’라고 했다. 여기서 ‘개념’은 도구이고 목표는 ‘시대’다. 적어도 젊은 시절의 헤겔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자기 시대’였다. 대학 1학년 때 프랑스대혁명을 경험한 그는 어떻게 하면 그 혁명을 독일로 끌어올 수 있을까 고심했다. 혁명을 지지하는 소규모 모임에 가담하기도 했고 선언문을 쓰기도 했다. 개념으로 시대를 포착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시대와 대결하는 것이고 대결을 통해 더 나은 시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뒷날 독일 관념철학의 완성자라는 칭호를 얻은 헤겔의 진정한 탐구대상은 관념(개념)이 아니라 현실(시대)이었던 것이다. ‘앙가주망’은 사르트르의 신념이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 헤겔의 마음이기도 했다.
최근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가 ‘삼성제국’의 해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나라 곳곳의 철학자 230여명이 이 성명에 함께했다. 하나의 사태를 두고 이렇게 많은 철학자들이 한목소리를 낸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성명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우리 철학하는 이들은 우리의 직업인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 윤리 개념인 ‘양심’의 입장에서, 과연 우리 국가와 사회가 바로 이 양심을 알아보고 지원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비상한 관심으로 주시해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 철학하는 이들은 ‘삼성제국’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경제적 독재권력이 중심에 놓인 이 사건을 (…)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념 전문가라 할 철학자들이 시대와 대결하겠다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앙가주망 없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다. 이들이 성명서에서 말한 ‘양심’을 시험하는 일들은 삼성사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끝없는 거짓말이 정상적 정치언어로 통용되는 이 시대야말로 삼성사태와 한몸이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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