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삶의창
준홍씨는 지인이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만난 사람이다. 내가 그곳에 가끔 방문을 할 때면 입구에서부터 그를 만난다. 그는 항상 바쁘게 일한다. 내가 볼 때마다 그는 늘 무엇인가를 쓸거나 닦고 있다. 의사인 내 눈에 비친 그는 유전성 질환을 가진 사람이었다. 눈에 띄게 작은 키에 목이 짧고, 손가락도 마치 한마디 정도는 없는 느낌이 들 만큼 짧았다. 아마 그래서 지인의 시설에 있는 모양이라 추측은 되지만, 보기에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번은 용기를 내서 지인에게 물어 보았다. “지금 밖에서 복도청소를 하는 저 분 월급은 주는 거지?” 그러자 지인이 대답했다. “물론이지, 그럼 아무리 어렵기로서니 사람을 그냥 부려먹겠어?” 나는 그래도 뭔가가 명쾌하지 않아서 내친김에 다시 물었다. “그래도 시설에 계신 분들을 이렇게 일하시게 해도 별 문제는 없는 거야?” 그제서야 지인이 내 질문의 의미를 알아듣고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아니야. 저 친구 여기 있는 거 아냐, 사회복지학과 학생인데 아르바이트생이야. 본인이 여기서 복지 관련 실습도 할 겸, 학비도 벌 겸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한 거야. 그런데 저 친구 대단한 친구야. 어머니가 시내에서 난전을 하시는데 저 친구가 그 어머니를 아주 끔찍이 여겨. 여기서 일을 마치면 다시 거기 가서 일하고 그러나봐. 정말 좋은 친구야. 그런데 아버지가 좀 문제가 있나봐. 선천성 장애가 있으신가 본데, 그걸 비관해서 늘 술로 세월을 보내시나봐.”
나는 다시한번 되물어야 했다. “저 친구라니? 그리고 학생이야? 나이가 얼만데?” 그러자 지인이 말했다. “아 저 친구 나이가 꽤 들어보이지? 이제 스물아홉인가 그래. 남들 보기에는 열댓살은 더 돼 보일거야.” 그런 준홍씨가 직원들 회식자리에서 이렇게 말하더라고 했다. “저는 졸업하면 저희 아버지 같은 분들을 보살펴 드리는 일을 하려고요. 어릴 때 보니까 저희 아버지가 많이 힘드시더라구요. 그래도 아버지는 저같은 아들이라도 있지만, 여기 시설에 계신 분들은 그마저도 없으시잖아요. 그게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항상 옆에서 많이 봤거든요.”
그 이후로 나는 준홍씨와 제법 친해졌다. 그곳에 갈 때마다 제법 아는 척을 하고 서로 안부라도 물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준홍씨가 올해 초에 졸업을 했으니 지금은 어딘가 취직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곳에 있는 것이 의아했다. “자네 여기는 자네같이 복지학 전공자가 일할 만한 규모는 못될 텐데. 왜 아직 아르바이트를 하나?” 그러자 준홍씨가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게 쉽지 않네요. 제가 성적은 장학생이었는데, 막상 취업을 하려니, 생긴 게 이래서 면접에서 잘 안 되네요. 힘은 충분한데, 약해 보이나 봐요. 그렇다고 장애인 특별전형 대상도 아니고. 뭐, 곧 취직이 되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아니 왜 장애인이 안 돼? 세상에 그럼 아직 장애진단 신청도 안 한거야? 맙소사! 자네는 충분히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어. 내가 아는 병원 소개해 줄까?” 그러자 갑자기 준홍씨의 표정이 확연히 변하더니 그 온순한 얼굴에 노기까지 등등해졌다. 그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 장애 아닙니다! 저 정상인입니다!!” 순간 그의 눈빛에서 온갖 편견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쓰러졌을 그의 아버지가 비치는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의 일생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장애인의 아들로서 그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가 그 한마디에 모두 담겨 있었다. 그는 내 말에 상처입은 새처럼 떨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서슬 푸르게 소리쳤다.
“저 장애 아닙니다, 정상이라 말입니다!”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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