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르포작가
삶의창
새벽 세 시 반에 눈을 떠 네 시에 집을 나선다. 네 시 반, 통근버스를 타고 부산을 출발해 언양에 있는 공장에 도착하면 다섯 시 이십분. 작업복을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다. 다섯 시 사십 분 작업장에 들어가 야간 근무자한테서 업무를 넘겨받는다.다섯 시 오십오 분 조례, 여섯 시 작업 시작. 정확하게 열두 시간 뒤 저녁 여섯 시가 되어야 일이 끝난다. 오전 아홉 시 삼십 분에 이십 분, 낮 세 시에 이십 분 두 차례 쉰다. 점심은 한 시간. 화장실에 가려면 작업복을 다 벗고 다녀와야 한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노동자들은 아예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이십 분 안에 벗고 다녀오고 다시 입는 일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엘시디(LCD·액정표시장치)를 만드는 일. 패널을 자르고 액정을 넣고 본드로 붙이고 …. 때로 정규직 관리자가 초시계를 들고 옆에 선다. 뭐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더니 며칠 뒤엔 일 분에 생산할 양을 제시한다. 하루 내내 서서 일한다. 다리가 아파도 앉을 의자가 없다. 청정구역에서는 주저앉아도 안 된다. 3조 2교대도, 2조 2교대도 주야간 맞교대는 병명도 없이 몸을 망가뜨린다.
삼성에스디아이(SDI) 하이비트 해고 노동자들이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7년 동안 겪은 일이다. 처음부터 하이비트 소속은 아니었다. 하청회사 20여곳이 하나씩 구조조정으로 사라지는 동안 많게는 다섯 번 전환배치된 노동자들이 마지막에 남은 하청 하이비트에 모였다. 현장에는 하청 노동자들과 1998년 구조조정 때 만든 사내기업 노동자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다. 한 공간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나누고 차별하는 걸 과연 당연하게 보아야 할까.
구조조정, 효율성과 비용 절감이 최선이고 대세이고 대안이라고 목소리 높이는 이들이 있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노동자가 산다고. 하지만 기업과 나라는 살아나고 노동자는 차디찬 거리로 내몰린다. 효율성과 비용 절감에 고개 끄덕여 동의할 때 그것으로 따져서는 안 될 사람이 숨진다. 동의할 것과 동의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불안한 노동을 하던 하이비트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하자 하이비트는 폐업했다. 면접·교육·일 모두 삼성에서 이루어졌기에 그 삼성을 상대로 하이비트 노동자들은 4월1일부터 복직투쟁을 했다. 울산시청 남문 앞 노숙농성이 70일째 되던 날은 시월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내가 본 작은 천막이 몰아치던 태풍도 버텨냈다고 한다. 지난 13일, 하이비트 해고 노동자들은 다시 한번 구조조정이라는 태풍이 몰아칠 삼성에스디아이 부산공장 앞에 천막을 쳤다.
천막을 치고, 단식을 하고, 저 높은 곳으로 오르는 사람들.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는 광흥창역에 있는 시시티브이탑에 올라 단식투쟁을 한다. 코스콤 비정규 노동자는 여의도에 세운 ‘통곡의 탑’에 올라 단식투쟁을 한다. 지에스칼텍스 해고노동자 한 사람은 35일 동안 단식 뒤 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다시 단식투쟁을 하고 두 사람은 여천에 있는 초고압 송전탑으로 올라갔다. 이 사업장들 말고도 천막은 더 많고, 앞으로 다시 누가 마음을 벼리며 저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할지 모른다.
하이비트 노동자들이 천막을 쳤던 시청에서 파업을 하루 앞둔 울산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을 보았다. 그이들이 맞춰 입은 자줏빛 조끼 등에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란 외침이 두 줄로 새겨졌다. 쉽게 읽을 수도, 쉽게 읽히지도 않던 말. 저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가슴 먹먹하던 말. 천막도 단식도 고공농성도 모두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친다. 고개 끄덕여 동의해야 할 건 무엇인가.
박수정/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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