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1764년 작은 책 한 권이 조용히 유럽을 흔들었다. 26살의 젊은 이탈리아인 체사레 베카리아(1738~1794)가 쓴 〈범죄와 형벌〉이 진원이었다. 사법제도 혁신을 주장한 이 책에 유럽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열광했다. 25년 뒤 터진 프랑스 혁명은 베카리아의 책에서 따온 문구들로 ‘인권선언’을 장식했다. 〈범죄와 형벌〉에서 베카리아가 특별히 강조한 것이 ‘사형제 폐지’였다. 사형이란 ‘한번 집행하면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순 없다. 사형제도는 불완전한 인간이 무오류의 절대자 지위를 넘보는 오만이다. “인간은 오류 없는 존재일 수 없으므로 사형을 내릴 만큼 충분한 확실성이 결코 보장될 수 없다.” 사형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전쟁이요, 법을 빙자한 살인이며, 인간성 파괴를 제도로 허용하는 반인간적 행위라는 것이 베카리아의 신념이었다.
베카리아 이후 사형제도는 문명국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도 여전히 적지 않다. 사형이 범죄를 예방하는 효율적 방책이며, ‘당한 대로 되갚아 준다’는 동태복수의 권리라는 것이 옹호자들의 주장이다. 1972년 사형제를 폐지했던 미국은 4년 만에 이 제도를 부활시켰다. 이때 부활을 주도한 사람이 연방대법관 해리 블랙먼이었다. 그랬던 그는 1994년 퇴임을 앞두고 “나와 동료 판사들은 20년 넘게 사형제도가 공정하게 집행되도록 노력했지만 실패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며 ‘사형제도 반대’를 선언했다. 지난 10일은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이었다. 1997년 12월30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마지막 업적’으로 사형수 23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오는 12월이면 한국은 만 10년째 사형 집행이 없는 ‘사실상 사형 폐지 나라’ 대열에 든다. 그러나 사형제를 법적으로 없애자는 특별법안은 15대 국회 이래 3대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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