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삶의창
원기씨가 병원에 왔다. 그는 정신지체 장애가 있어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더구나 같이 온 노모마저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 그와 의사소통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어떨 때는 두 분 중 누가 아파서 병원에 온 건지를 알아내는 일도 만만치 않아서 이들 모자가 오시면 접수실에서부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한다. 진료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거의 고함 수준의 고성이 오가야 겨우 몇 가지 병세를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시작부터가 좀 심상치가 않았다. 아침부터 원기씨의 얼굴색이 고추잠자리처럼 빨개져 있었고 진료실에 들어서는 걸음걸이도 아예 갈지자로 비틀거렸다. 노모 역시 잔뜩 화가 나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그만큼 술 묵지마라 안하더나! 묵지도 못하는 술을 그렇게 퍼마시나. 아이고 차라리 니하고 내하고 마 어디 가가 팍 디져뿌리자 이노무 자슥아!” 하시며 다짜고짜 아들의 어깨를 잡고 등을 마구 때리셨다.
아마 어제밤에 원기씨가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원기씨는 자기를 때리는 노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원기씨는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를 청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손을 마주 내밀자 그 억센 손으로 내 손을 쥐고 몇 번 흔들더니 갑자기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진료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아마 구토하러 화장실로 간 모양이었다.
그러자 노모가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시며 하소연을 하셨다. “원장님요, 자가요 평소에는 천사인데 술만 마시면 저런다 아이니껴. 원래 술도 못 마시는데 요번 추석때부터 저래 술을 마시네요. 추석에 지 조카가 지 흉내를 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니더. 그날부터 쟈가 저라니더. 일학년짜리 아아가 무슨 철이 있겠니껴. 저거 큰아버지 몸 불편한거랑 말 못하고 어버버버하는 거를 흉내내는 것을 보고 쟈가 쇼크를 받은기라예. 그러고는 밤마다 어디가서 술 먹고 들어와서는 밤새도록 우는데. 조카가 어버버 흉내낸 거를 지가 다시 어버버하고 흉내를 내다가, 또 울다가, 또 흉내를 내다가 … 아이고.”
그 사이 화장실에 다녀온 원기씨가 다시 내 손을 잡고 뭐라고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어버버’ 하고 계속하는데 확실히는 몰라도 자기 동생들과 조카들이 자기를 놀린 것을 나에게 뭐라고 하소연을 하는 것 같았다. 조카가 자신을 놀리는 모습을 재연하는 그의 눈에 물기가 맺혀 있었다. 순간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릴 때부터 남동생 둘은 공부를 썩 잘했으나, 형을 늘 부끄러워하며 숨기려 했다고 한다. 동생들이 결혼할 때도 제수씨에게 형이 아니고 가까운 친척인 것처럼 행동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노모가 울먹이며 말씀하셨다.
“저거들은 다 머리가 좋아서 서울에 좋은 학교 나와서, 큰 회사 다니고 추석에 마누라, 자식들 데리고, 좋은차 타고 내려오는데, 쟈는 저렇게 술이라도 마셔야 맺힌 속이 안 풀리겠느냐”고, 이번에는 할머니께서 원기씨를 애써 변명하셨다.
일단 진료를 마치고 링거를 맞히려고 원기씨를 병실로 보내는데 그가 진료실 나서면서 내게 또 악수를 청했다. 나와 동갑인 그의 눈이 마치 아이의 그것과 같았다. 그 눈을 보며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할머니 가슴은 또 오죽하랴 싶었다. 그렇게 그를 병실로 보내고 한 시간쯤 후에 병실에 가 보니 할머니는 보호자 침대에 웅크리고 주무시고 계시고 원기씨도 검게 탄 오른팔에 링거를 꽂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가는 아직도 촉촉했고, 양말도 없이 담요 사이로 비집고 나온 거친 발에 박힌 굳은살은 그가 살아온 슬픈 삶의 나이테를 대신하고 있었다.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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