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온라인부국장
한겨레프리즘
4·19를 앞두고 고려대에 다니던 그는 가짜학생이었다. 나이도 동료학생보다 10살 정도 많았다. 배우고 싶은 마음에 청강생 자격도 없이 강의실 한 켠을 차지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갔다 귀국해, 6·25 전쟁통에 결혼한 그는 8년반 동안의 하사관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복귀했다. 어린 자식을 업고 등교하는 그의 향학열에 교수들도 감동했고, 학교 가는 남편을 대신해 아내는 돈을 벌었다. 그러나 현대사의 거센 파도는 그의 운명을 휘젓기 시작했다.
4·19 혁명이 시작됐고, 고려대 교모까지 쓰고 시위대 전면에 섰던 그는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는 5명의 시위대표에 뽑혀 경무대까지 들어갔다. 이 대통령을 만나 당당하게 하야를 요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4·19혁명 공로자회 사무총장을 맡아 사회활동을 했다.
혁명 3년 뒤 박정희 정권 아래서 4·19 관련 건국표창장까지 받았던 그는 유신정권이 시퍼런 비수를 번뜩이고 있던 1975년 “유신헌법과 만연되고 있는 부정부패, 학원 종교 탄압과 고문 정치는 4·19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자신이 받았던 건국표창장을 총무처에 반납하는 ‘의거’를 일으켰다. 독재정권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10여일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그를 종로경찰서장은 자신의 차로 응암동 시립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 2년 동안 그는 정신병원에서 살해 위협과 싸우며 모진 목숨을 이어가야 했다.
그가 정신병원에 격리되면서 가족은 해체됐다. 중앙정보부의 사찰로 공포에 떨던 가족은 남편과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리고 적이 됐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쓰레기통을 뒤져 먹거리를 찾아내며 목숨을 부지했다.
독재정권 아래서 한 맺힌 가슴을 부둥켜안고 살던 그는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다. 그리고 모두를 용서했다. 그러나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가 풀고 싶은 숙제가 있다.
1969년 9월10일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1면 하단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영도력을 찬양하며, 3선 개헌을 지지하는 성명서가 실렸다. 당시 3선개헌 반대를 위해 학생 등 양심세력들은 연일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다. 놀랍게도 이 지지성명서는 4·19 관련 3개 단체장의 이름으로 된 것이었다. ‘4월혁명동지회’ ‘4·19 유족회장’ ‘4·19 중앙회장’ 이름으로 발표된 이 성명서는 이 단체 주요 간부들이 ‘파월 국군위문단’으로 베트남에 외유가 있는 동안 게재됐다.
4·19 중앙회 사무총장이었던 그 역시 이런 성명서가 발표된지를 몰랐다. 이 성명서에는 “3선 개헌을 누구보다도 반대해야 할 우리지만 중차대한 시기에 박 대통령에게 좀더 이 나라를 계속 영도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허용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고 신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흘 뒤 3선 개헌은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는 이 성명서가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린 애국 영령들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느꼈으나, 긴 세월 동안 말하지 못했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공작을 통해 4·19 단체 관련자들을 배제시킨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는 머지않아 이 성명서 발표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공개적으로 호소할 예정이다. 이런 저런 과거사가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마당에 자신과 4·19 유족들의 가슴에 못질을 한 절대 권력의 만행도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미 저는 그들을 용서했어요. 다만 왜곡된 사실을 규명해 4·19 민주혁명 영령들의 38년 된 한을 풀어 드리고 싶어요.” 이번 대선에 출마한 100여명의 군소 예비후보 가운데 한명인 김기일(77) 목사의 바람이다. 이길우/온라인부국장 nihao@hani.co.kr
그는 이 성명서가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린 애국 영령들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느꼈으나, 긴 세월 동안 말하지 못했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공작을 통해 4·19 단체 관련자들을 배제시킨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는 머지않아 이 성명서 발표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공개적으로 호소할 예정이다. 이런 저런 과거사가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마당에 자신과 4·19 유족들의 가슴에 못질을 한 절대 권력의 만행도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미 저는 그들을 용서했어요. 다만 왜곡된 사실을 규명해 4·19 민주혁명 영령들의 38년 된 한을 풀어 드리고 싶어요.” 이번 대선에 출마한 100여명의 군소 예비후보 가운데 한명인 김기일(77) 목사의 바람이다. 이길우/온라인부국장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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