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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진보정치에 대한 예의

등록 2007-10-09 18:03수정 2018-05-11 15:57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20:80으로 양극화된 사회는 다수인 ‘80’이 소수인 ‘20’에게 지배당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민주주의 제도에선 당연히 ‘80’이 지배해야 맞다. 더욱이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들과 달리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민주주의를 신봉하며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는 누구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더욱 ‘80’이 지배해야 맞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20:80의 불평등, 대중의 궁핍화는 완화되기는커녕 시장만능주의, 승자독식으로 15:85, 10:90으로 치달으면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모순은 ‘80’의 대부분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처지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의 말을 빌리면, 강남 사람들은 철저하게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데 반해 강북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가령 ‘조중동’이 ‘20’의 이익을 대변하여 ‘세금폭탄론’을 제기할 때 세금 낼 것도 없는 ‘80’에 속한 사람들도 이에 부화뇌동한다.

‘80’의 이와 같은 자기 배반은 물론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것처럼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그들이 장악한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지배이념을 끊임없이 유포함으로써 대중의 의식을 통제하고 조작한다. 그 결과 피지배계급의 자기 배반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남다른 것은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또 다른 명제가 오로지 ‘20’에게만 적용될 뿐이고 ‘80’에게는 적용되지 않음으로써 노동자들 대부분이 반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을 만큼 ‘80’의 자기 배반의 정도가 아주 심하다는 점이다. 이는 분단 상황이 부른 굴레인 게 분명하다.

새삼스레 정치학 원론에서 나올 만한 얘기를 길게 한 것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처지’와 ‘의식’ 사이의 괴리가 낳은 정치세력 지형의 왜곡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우편향, 취약한 진보정치세력, 이른바 보수정치세력이 주로 보수를 참칭한 수구세력인 점, 그러한 보수의 대칭 세력을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게 된 점, 이 모든 게 대중의 처지와 의식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집권한 뒤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양산,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대중의 처지’를 배반하는 정책을 펼친 세력까지 ‘진보개혁세력’에 포함시킨다면, 그것은 ‘대중의 처지’가 아닌 ‘대중의 자기 배반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진보정치는 당연히 ‘대중의 처지’를 개선시키는 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 어려움은 대중이 자기 배반 의식으로 진보정치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는 점이다.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비판적 지지론이 대두되고 있다. 본디 올바른 지지 형태는 비판적 지지이지만 한국에서 사용되는 비판적 지지는 왜곡된 의미를 갖는다. 솔직히 말해,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는 것은 한나라당 후보를 미는 결과를 가져오니 문국현씨가 포함된 범여권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삼진아웃’ 시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대중이 자기 배반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스스로 물어야 하며, 대중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적어도 비정규직법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같은 진보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없이 비지론을 주장하는 것은 대중의 자기 배반 의식 위에 군림하겠다는 권력의지 표명과 다를 바 없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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