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르포작가
삶의창
처음 가는 울산,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저녁, 낡은 배낭을 멘 나이든 노동자들이 어제도 그제도 그랬을 것처럼 버스에 올랐다. 누구도 비좁다고 몸을 뒤틀거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빈틈을 찾아 자리를 만들고, 앉았던 자리를 내준다. 더러 아는 이를 만나면 그을리고 주름 깊게 팬 얼굴로 인사 나눈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웃음으로. 그런 얼굴을 보면 왠지 고개가 숙여진다.
현대자동차 정문 건너 쪽, 골목을 찾아 들어가니 한 건물 3층에 울산노동자 배움터가 있다. 배움터를 일구는 기획위원과 사무장은 동지이자 부부다. 사무실 한쪽에서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다 해고된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가 말 없이 자료를 정리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동네나 배움터 사무실은 똑같이 낡고 허름한 살림이지만 비루하지 않았고, 스스로 외로워하지 않았다.
배움터는 ‘땀 흘려 일하고 시간을 쪼개 공부하며 현실을 개척해 나가는’ 노동자 교육 공간이다. 달마다 주제를 잡아 서너 차례 강좌와 토론회를 진행한다. 올해만도 한국 노동자 운동, 자본주의, 혁명철학, 노동자의 삶과 문화, 세계노동자 운동사를 다뤘다. 한 달에 7천원이 채 안 되는 회비를 내고 일년 강좌를 들을 수 있다. 지난달 주제는 노동자 글쓰기였다. 부족한 내가 셋째 시간을 맡았다.
7시쯤 얼추 자리가 찼다. 세 시간이면 모자라는 잠을 자든,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든, 식구들과 함께하든, 운동을 하든, 텔레비전을 보든, 뭐든 넉넉히 할 시간이다. 그런 걸 뒤로 하고 일을 마치거나 밤 근무를 앞두고 딱딱한 책상 앞에 앉은 이들은 스물 중반부터 마흔 중반까지 다양했다. 정규·비정규·하청·해고 노동자로 놓인 조건도 달랐다. 짧게는 5년부터 길게는 20년 넘게 일한 노동자, 열다섯 명.
글을 쓰려면 머리에 쥐나고 무섭기까지 하다는 이들한테 종이를 나눠줬다. 살면서 겪고, 보고, 듣고, 느낀 걸 떠올려 글감을 찾자고 했다. 몸에 난 상처만 들추어도 수십 가지 이야기가 나올 사람들, 마음에 난 상처까지 치면 소설 몇 권 아니겠는가.
다 적은 글감을 앞사람부터 말했다. 빨간 펜으로 받아 적으니 어느새 흰 칠판이 빽빽하다. 어린시절 늘 책을 물들인 김치 한 가지였던 도시락 반찬,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 못배웠다고 차별하는 세상에서 느낀 서러움, 하청 노동자 생활,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일, 주야간 교대로 밤샘 근무할 때 힘든 점, 특근으로 몸이 상해 보약 먹고 다시 특근하는 생활, 비정규직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오히려 그 친구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나서지 못한 일, 노조, 노동운동, 정말 쓰기 싫은 유인물, 2만원 주고 파마한 다음날 하게 된 삭발투쟁, 구속된 노동자들과 집행유예 선고받고 풀려난 재벌들, 혼자 사시는 어머니,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다시 보게 된 아버지, 자녀 교육문제, 부부갈등, 공장 동료, 인생계획, 퇴폐문화를 비판해 왕따당한 일, 돈, 술, 모자란 잠, 가치문제, 골병든 노동자와 벌침, 해고 뒤 20년을 이어온 동지들과의 인연 …. 집 짓는 일을 하는 한 노동자는 ‘곤색 작업복’이라는 제목아래 어린 시절(달동네 삶), 청소년 시절(대물림되는 가난), 사회생활(타인 때문에 처음 눈물 흘린 일, 첫 직장에서 받은 작업복, 해고와 복직투쟁, 작업복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 아직도 간직한 작업복)로 졸가리를 짰다.
아무도 자리 뜨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어주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야간근무로 몇 사람이 가고 30분 남짓 글을 썼다. 배움터가 돈 안 되는 일을 하듯 세 시간, 돈 되지 않을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썼다. 사람들 모두 한 꺼풀 벗고 만나면 안다. 내가 그립고, 네가 그립고, 그 무엇이 그립다는 걸. 삶은 못내 그리운 게 아닐까.
박수정/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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