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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Esc, 다시 ‘탈주’를 꿈꿉니다 / 고경태

등록 2007-09-30 18:08수정 2007-10-02 17:32

고경태/ 매거진팀장
고경태/ 매거진팀장
편집국에서
“매거진팀? 헷갈리네요.”

아직도 상당수의 취재원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한겨레 매거진팀 소속 아무개”라고 밝히면 의아한 표정을 짓습니다. “무슨 잡지를 만드는 팀이냐”고 되묻기도 합니다. “별도의 주말 섹션 같은 걸 만드는 팀”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Esc>라는 이름도 여전히 귀에 익지 않은 편입니다.

한겨레 매거진팀이 매주 목요일 <Esc>를 낸 지 여섯 달째로 접어듭니다. 신선한 삶의 풍경을 전하는 ‘새로운 리듬의 생활문화매거진 섹션’을 표방하며 출발했는데, 그에 걸맞는 일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Esc>는 그동안 <한겨레>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왔던 여행·요리·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한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다뤄왔습니다. 주방장의 칼 이야기를 다룬 ‘칼의 노래’, 공항을 6쪽에 걸쳐 해부한 커버스토리 등 독자분들의 호평을 받은 ‘성공작’도 꽤 많이 내보냈다고 자부합니다. 기존의 신문 문법을 넘어서는 형식의 파격도 꾀해 보았습니다. 모든 지면을 ‘추리물’로 채우거나 ‘수능고사식 퀴즈’로 도배한 게 그런 경우였지요. ‘최범석의 시선’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좀비의 시간’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너 어제 그거 봤어?’ 같은 연재물과 함께 ‘사용불가 설명서’ ‘연예가 공인중계소’ ‘적정관람료’ 같은 작은 고정물들에도 많은 독자들께서 애정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공연티켓이 상품으로 걸린 만화연상퀴즈 때문에 <Esc> 블로그는 언제나 불이 나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엔 걱정이 많았습니다. 한겨레의 전통 독자들에게 ‘거슬리는 존재’가 될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심각하고 진지한 독자들로부터 “흥미를 앞세운 ‘먹고 놀자류’의 기사가 한겨레의 창간 정신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꾸지람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한겨레 독자는 자잘한 생활과 엔터테인먼트 정보 따위엔 시큰둥할 거라는 예단은 편견이었던 셈입니다.

물론 기사 내용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독자들이 꽤 있습니다. 나이가 지긋할수록 그런 기색이 완연합니다. 젊은 코드에 잘 적응이 안 된다는 거지요. 그런 분들께는 더더욱 <Esc>를 열심히 읽을 것을 권합니다. 도로 젊어질 수는 없지만 젊은 감성은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정색을 하고 <Esc>에 우려를 전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6월21일치 김형태 시민편집인의 칼럼이 대표적입니다. “<Esc> 섹션의 감성과 소재는 포스트모던하되 젊은이들의 삶을 소외시키고 갉아먹는 적, 자본의 본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Esc> 콘텐츠가, 그걸 향유할 수 없는 이들을 소외시키는 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하다는 지적입니다. <Esc>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자본의 본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는 물음에는, 외람된 표현이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즐겁게 놀자고 모인 파티장에 참석해 “시국성명서는 제대로 낭독할 건지 기대 반 걱정 반”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본지가 ‘자본의 본모습을 보여줄’ 책무를 지니고 있다면, <Esc>는 ‘재미있고 창조적인 일상의 본모습을 보여줄’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역할 분담입니다. <Esc>는 정론지인 <한겨레>의 엄숙함을 살짝 누그려뜨려주는 소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은 언제나 달게 받겠습니다. 낡은 아이디어를 배격하겠습니다. 늘 똑같은 반찬에 질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Esc>가 출범 여섯 달째를 맞아 연재물 등 일부 지면을 조정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애정이 깃든 잔소리와 꾸중을 기대합니다.

고경태/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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