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영화 프로듀서
삶의창
그때 검찰은 만능 해결사였다. 6공 때 5공 비리 사건, 수서택지 특혜분양 사건, 정보사 터 사기 사건 등등 의혹 사건이 줄줄이 터졌고, 줄줄이 검찰로 왔다. 검찰의 수사를 독촉하던 언론은, 검찰 입에서 특정인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부터 그와 관련된 모든 기사들을 썼다. 피의 사실은 공표됐고, 언론의 보충 취재가 보태져 공분을 부추겼고, 그의 범죄는 소환될 때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피의자 인권, 무죄추정 원칙 같은 건 적잖이 무시됐다.
대통령이 대형 국책사업마다 직접 수백억원씩의 뒷돈을 챙기던, 즉 대통령이 권력형 비리 사건의 주범이던 시절의 정치학이다. 의혹이 불거지고, 언론은 검찰을 불러내고, 검찰은 피의 사실을 흘리면서 언론의 힘을 빌려 고위 공직자를 소환하고, 그러다 적당한 선에서 끊고, 언론은 잠깐 검찰을 욕하고, 다른 의혹이 제기되면 또다시 검찰이 나서고 …. 검찰은 해결사라기보다 의혹 진화용 소방수에 가까웠지만, 그 시절에 그만큼의 역할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범죄 수사로 해결할 사안이 아님에도 검찰이 나서는 경우가 생겼고, 그러면 누군가는 잡아넣었다. ‘네 죄(여론을 시끄럽게 한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의 처벌도 있었고, 종종 범죄와 무관한 가십성 기사를 흘리는 따위의 언론플레이가 뒤따랐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런 식의 검찰과 언론의 공생관계도 바뀌는 듯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커져 특별검사제가 도입됐고, 검찰도 수사 결과 발표 전의 브리핑을 대폭 줄이고 만능 해결사를 자처하는 일도 멈추는 듯했다. 언론도 수사 상황을 중계하는 기사를 줄이는 듯했다.
신정아 사건이 터졌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학벌을 더없이 중시하면서도 학력 관리·검증 체계는 허술한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 고도의 전문적인 소양을 요구할 것 같았던 미술계의 또다른 이면 등에 대한 토론뿐 아니라 그런 사회를 사는 개인의 삶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반추가 뒤따랐다. <태양은 가득히>처럼 상류사회에 위장 진입한 이의 비극적 드라마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여기에 변양균씨가 등장했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달라질 게 있을까 싶은데, 검찰이 나서고 언론이 수사 중계 보도를 부활하면서 달라져 간다.
지금 얘기되는 변씨의 혐의 사실이 모두 유죄로 입증된다 해도, 신씨 사건에 공사 구별하지 못한 고위 공직자의 비리가 얹혀지는 것일 테고, 그건 이미 사람들이 유추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그 수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매일같이 속을 들여다봐야 할 새로운 것이 있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의 보도는 6공 시절을 연상케 한다. 피의 사실이 공표되고, 공분을 부추기려는 듯 범죄와 무관한 사생활 기사가 흘러나온다. 발행부수 1, 2위를 다툰다는 신문이 신씨와 변씨 사이의 전자우편에서 서로 호칭을 어떻게 불렀다는 기사를 검찰 말을 인용해 내보낸다.
현 정부에 반감을 드러내는 신문들은 얻을 게 있을지 모르지만, 검찰은 왜 그럴까. 법원이 ‘실형을 선고할 사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까지 덧붙여 영장을 기각했다면, 불구속 수사하고 기소해서 안 될 게 있을까. 왜 전자우편 내용까지 언론에 보도되게 하면서 한사코 영장을 재청구하려고 할까. “변씨가 신씨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씨가 해 달라는 것들을 하게 해준 게 사건의 본질로 보인다”는 말, 이전에 해결사 노릇할 때 의혹 진화용으로 내놓던 해설기사 같은 말을 왜 할까. 검찰과 언론이 그러는 사이, 이 사건에서 관찰과 반추는 사라지고 프라이버시 침해와 가십과 잔인함만 남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사회적 이슈가 형성되고 가닥을 잡는 방식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건 답답한 일이다.
임범/영화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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