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삶의창
명준씨의 검사 결과지를 무심코 읽다가 마치 숨이 멎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시경 결과지에 아데노 칼시노마(선암)라는 조직검사명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35살인 명준씨는 일주일 전에 내게서 내시경 검사를 받은 환자다. 그는 처음에 두통을 호소하며 진료실을 방문했지만, 진료 말미에 위가 좋지 않다며 제산제 처방을 같이 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이미 꽤 오랫동안 속 쓰림이 있었다고 했다. 마다하는 그를 설득해서 어렵사리 시작한 내시경 검사로 본 그의 위장 점막에 특별한 괘양소견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위가 납판처럼 뻣뻣하고 공기를 집어 넣어도 잘 부풀어 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우선 몇 군데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기로 했었다.
상당히 예후가 나쁜 경우였다. 이것은 암세포가 점막 아래쪽으로 번져서 위 전체에 퍼져 있다는 의미였고, 더구나 30대의 청장년 암임을 감안한다면 수술을 한다고 해도 그의 치료를 장담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우선은 단층촬영을 해서 전이를 확인하고 하루빨리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그 길로 명준씨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로부터 아빠가 송이를 따러 영양에 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날 저녁에야 자리를 마주 한 그는 전혀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지금 서울에 있는 딸을 데리러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명준씨는 지금 혼자다. 그의 아내는 재작년에 그의 곁을 떠났고 아들은 명준씨가, 딸은 서울에 있는 처가에서 키우고 있다. 그는 그렇게 보고 싶은 막내딸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이번 추석을 같이 보낼 작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명준씨 아내도 원래는 건강하던 분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잠깐 경련을 일으켰다. 놀란 명준씨가 아내를 내게 데리고 왔지만, 나로서는 대학병원에 진료의뢰서를 써주는 것밖에는 달리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아내의 병명은 ‘뇌암’이었다. 이미 상당히 큰 종양이 소뇌를 압박해서 경련이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명준씨는 그 길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의 투병생활에 함께 매달렸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수술과 방사선 치료에도 일년반 만에 명준씨와 두 아이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시련이 시작되었다. 그가 다니던 직장은 그가 돌아갈 자리를 다시 만들어 줄 여유가 없었다. 명준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공사판이던, 송이 채취건, 하우스 작업이건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몸은 점점 망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리 속이 쓰려도 병원 한번 오지 않다가 최근에 두통이 생기고서야 겨우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아내가 뇌암으로 쓰러진 탓인지, 두통만은 그의 발길을 병원으로 이끌게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명준씨를 앞에 놓고, 차마 사실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한시도 눈에 밟히지 않는 때가 없었다는 막내딸에게 입힐 옷과 장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들고 지금 이 길로 서울로 올라간다는 한 남자에게 차마 눈앞에 닥친 불행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우선은 약을 처방할테니 추석 다음날 꼭 결과를 보러 오라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선생님 추석 잘 쇠시라고 꾸뻑 인사를 하는 명준씨의 손에 제산제 처방전을 쥐어 보내고는, 그의 진료예약을 위해 대학병원에 전화를 돌리려 하는데 자꾸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서 전화기의 버튼을 제대로 누를 수가 없었다.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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