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 온라인부국장
한겨레프리즘
손무(孫武)와 함께 중국 전국시대 최고의 병법가였던 오기(吳起)가 위나라 무후왕에게 간언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날 회의에서는 그 어떤 신하도 무후왕보다 나은 의견을 내지 못했고, 회의가 끝날 무렵 무후왕은 스스로의 능력에 만족해 만면에 미소가 가득 찼다.
그러나 위나라가 주변 국가들과 치른 76번의 전쟁에서 64번 승리를 거두었고, 12번 무승부를 기록하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불패의 장수’로 불린 최측근 오기가 발언을 시작하자 무후왕 얼굴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무후왕은 총명했지만 독선적이고 교만한 제왕이었다.
“왕이시여, 옛 초나라 장왕이 국사를 놓고 회의를 했는데, 장왕보다 뛰어난 의견을 내는 자가 없었습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장왕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습니다. 한 신하가 ‘어찌 그런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장왕이 대답했습니다. ‘세상의 성현을 찾아 스승으로 공경하면 천하의 왕이 될 수 있고, 벗으로 삼으면 패자(覇者)가 된다고 했소. 그런데 지금 내 주변에는 나보다 뛰어난 신하가 없음을 알았소. 신하들이 모두 나보다 못하니 초나라의 앞날이 걱정될 뿐이오.’ 이처럼 장왕은 신하의 무능을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주군께서는 그것을 기뻐하고 계십니다.” 오기가 말을 마치자 무후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가득했다. 오기의 병법서 <오자(吳子>의 <도국(圖國>편에 나오는 일화다.
2400여년 전의 일화가 떠오르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자기만의 독특한 원칙과 집념으로 살아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판단을 확신했다. 상고 출신으로 변호사를 거쳐 국회의원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의 자신감은 그를 정상의 자리로 밀어올린 가장 큰 힘이었다. 주변의 그 누구도 그의 논리를 제압하지 못했다. 그의 총명함과 자신감이 청와대를 휘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감은 오만과 독선으로 이어졌다. 언론과 심한 마찰을 빚고 있는 ‘취재 선진화 방안’은 참모들의 논의와 합의보다는 노 대통령 개인이 고수하는 집념에 따른 것이고, 이에 어떤 참모도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으로 알려진다. 아마도 노 대통령이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스캔들에 대한 언론의 각종 의혹 제기를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했던 것도 변 전 실장에 대한 고집스럽고 개인적인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국시대 법가 이론을 집대성한 <한비자>에서는 지도자를 세 가지로 나눴다. 삼류 지도자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고, 이류 지도자는 남의 힘을 이용하는데, 일류 지도자는 남의 능력을 이용한다며 조직관리의 핵심을 꿰뚫었다.
능력 있고 도덕심이 출중한 부하들의 시스템이 잘 가동된다고 했던 노 대통령의 자부심이 추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대기업 고위간부는 최고경영자가 가져야 할 능력과 조건으로 일곱 ‘쌍기역(ㄲ)’과 다섯 ‘끈’을 나열했다.
그는 지도자에게는 희망을 주는 ‘꿈’과 지혜로운 ‘꾀’, 다양한 재능의 ‘끼’, 추진력의 ‘깡’, 전문지식을 지닌 ‘꾼’,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꼴’, 사회 각계로의 ‘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섯가지 ‘끈’은 정열적으로 일하는 ‘화끈’, 불의를 보고 참지 않는 ‘발끈’, 외모의 ‘매끈’, 부하의 잘못을 때로는 묵인하는 ‘질끈’, 그리고 조직을 포옹하는 ‘따끈’함이었다.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전국시대 오기가 거론한 지도자의 네가지 요건인 위(威·위엄), 덕(德·관용), 인(仁·배려), 용(勇·결단력)의 현대적 해석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길우 온라인부국장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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