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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칼럼] 구원보다 사랑을 / 김형태

등록 2007-09-04 17:58

김형태/변호사
김형태/변호사
시민편집인칼럼
탈레반에 납치되었던 이들이 돌아왔다. 슬프게도 두 사람은 주검으로 돌아왔다. 배 목사가 목숨을 바쳐가면서 전하려 했던 진리는 무엇일까. 대문 아래 밀어 넣어진 교회 전단지를 보니 그 답이 짐작된다. “이제 당신이 구원을 받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행이나 노력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 당신 입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의 빚을 갚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나를 살리셨습니다’라고 고백만 하시면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 받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배 목사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바로 이 말을 전하고 싶었을 게다. 신학적으로 죄가 무엇인지, 죄의 빚을 어떻게 남이 대신 짊어질 수 있는지, 어떤 상태가 구원인지에 관해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런데 기독교의 본고장인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이런 전도지 교리를 바꾼 지 오래다. 미국의 일부 보수교단과 한국 개신교에서만 이런 믿음이 여전하다. 참새가 날아가는 나비를 잡아먹는 것, 교인들이 같은 피조물인 짐승이나 식물을 먹는 것은 죄가 아닌지, 어려서 죽은 영혼은 어린 아이의 몸과 마음으로, 노인은 노인의 그것으로 영생하는 것인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리 간단하게 믿고 남에게 전할 일이 아니다.

과학자 아닌 일반인들의 세계 인식은 원시시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세계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그대로의 절대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과학계의 상식이다. 초당 10회의 비율로 초음파를 보내 물체를 인식하는 박쥐의 세계는 우리가 보는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은 분리되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여 있다. 불가에서는 이미 직관으로 이를 알아 본 바 있다. 상대성 이론에 이르면 공간은 중력 탓에 휘어져 있고, 움직이는 속도가 빛에 가까워지면 시간도 느리게 간다. 절대 기준이 되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진리 앞에서 3000년 전 유대문화에서 비롯한 죄며 구원 같은 시·공간적 개념들 역시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는 종교의 알짬은 명백하다. 모든 종교를 통틀어 ‘조건 없는 사랑, 자비’다. 이집트 백성은 죄 없는 어린아이까지 모조리 죽이는, 유다성서의 신 여호와는 유다인들이 특정시기에 가졌던 신앙고백일 뿐. 신은 모든 존재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랑 그 자체라는 믿음이 기독교에도 널리 퍼져 있다.

“우리 주는 부활자이다. 그는 모든 존재의 주인이며 모든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적 한정을 거부한다. 그는 대자비(사랑)의 문을 열어 그 인식의 빛에 의해서 모든 존재로 하여금 영원성을 보는 자, 듣는 자, 말하는 자이게 한다.”

12세기 이슬람 시아파 예언자 살람은 기독교의 교리와 똑같이 가르쳤다. 예수의 본질이 사랑, 대자비임을 알지 못한 채 예수라는 이름에 매달려 입으로 예수가 구세주임을 믿고 고백하기만 하면 착한 일이나 노력도 필요 없이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 배 목사가 목숨 바쳐 예수를 전하고자 했던 아프간 사막에도 예수의 사랑은 이미 존재해 왔으니 그의 죽음이 애석할 따름이다.

<한겨레> 종교란에도 구원이나 해탈 같은 개인적, 이기적 가치를 넘어서서 사랑, 자비라는 공동체적 가치가 더 많이 소개되길 기대한다.

김형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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