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삶의창
할아버지가 또 혼자 오셨다. 원래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같이 오셔서 할머니는 옆방에서 심장 진료를 받고, 할아버지는 내게 관절염 치료를 받으시는데, 요사이는 계속 혼자 오셨다. 서로 곰살맞게 대하는 분들도 아니었고, 그저 말 없이 기다리다가 나중에 한분이 나오시면 서로 얼굴 한번 흘끗 보시고는 별 말도 없이 같이 일어서서 나가셨다. 두 노인이 참 친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여간 늘 그러셨다.
그런데 요사이는 몇 번이나 할아버지 혼자서 병원에 오셨다. 궁금해진 내가 여쭤보았다. “어르신, 할머니는 왜 안 오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가만히 숨을 몇 번 몰아쉬시더니,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다. “할마이 먼저 갔어. 몇 달 됐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원래 할아버지는 양계장에서 일하시고, 할머니는 고추꼭지 따는 일을 하셨다. 어느날 할머니 혈압이 지나치게 불안정해서 몇 번이나 보호자를 모시고 오라 말씀드려도 오시지 않기에, 억지로 전화번호를 물어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공기업에 다닌다는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노인네들 병이 다 그렇지 종합병원 가면 뭐해요? 그렇다고 뭐 수술할 병도 아니고. 그냥 알아서 치료해 줘요.” 어이가 없었지만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이런 일은 병원에서 다반사로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두 분이 늘 그렇게 일을 하셔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노인들 벌이가 그렇듯이 두 분이 번 돈을 모두 합해도 두 노인이 생활하기에는 늘 아슬아슬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가 팔과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은 채 병원에 오셨다. 할아버지께서 일하시는 양계장에서 가끔 질병으로 폐사한 닭을 집에 가져오시면 할머니는 그것을 기름에 튀겨서 같이 드시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할머니가 기름이 펄펄 끓는 프라이팬을 손에서 놓쳐버린 것이었다.
거의 3도에 가까운 화상이어서 결국 할머니는 입원 치료를 하시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 치료를 받고 할머니가 퇴원하시던 날, 입원비를 약간 줄여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장님요, 마이 미안하오. 늙은이가 이래 치료받고 돈도 다 못내고 가서 마이 마이 미안하오.” 할머니께 입원환자 진료비의 80%는 공단에서 지급하기 때문에 본인 부담금은 별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드렸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젊은 내게 연신 고개를 조아리셨다.
다음날 할머니가 외래진료를 받으러 나오신 길에, 내 진료실 책상 위에 무엇이 불룩하게 담긴 검은 봉지를 불쑥 올려놓으셨다. “원장님요. 이거 닭이요. 집에서 인삼 한 뿌리 넣고 푹 과서 잡수소.” 할머니 마음은 감사했지만, 차마 그것을 받을 수는 없었다. 내가 완강하게 사양하자 할머니는 그것을 도로 손에 드시더니 고개를 푹 꺾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장님요, 이거 폐계(폐사닭) 아이니더. 이거 생닭이니더.” 가슴이 뜨거웠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그것을 폐사닭이라 여겨 받지 않으신 것으로 여기신 모양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할마이가 살아 있을 때는 몰랐어. 아침에 일어나면 부엌에 얼렁거리고, 밤에 자다보면 다리가 뭐에 걸려. 그게 할마이라고 여겼어. 재작년에 마당에 초롱꽃을 같이 심었는데, 꽃이 참하게 폈어. 올해는 빨리 폈어. 그런데 그걸 못보겠어. 할마이가 생각나서 차마 그걸 못보겠어.” 할아버지는 ‘컥컥’ 하고 애써 눈물을 참으셨지만 금세 눈물이 다시 맺히고, 또 큰숨을 한번 들이쉬며 ‘컥컥’ 하시다가, 다시 눈물이 도르르 코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이 그리움과 만나 구름이 되고, 깊게 주름이 팬 노인의 눈 사이로 꽃비가 되어 흘러내렸다.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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