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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어머니, 세상을 떠나던 날 / 강수돌

등록 2007-08-29 17:38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나라살림가족살림
“어머니, 그동안 함께 살아 정말 고마웠습니다.”

“엄마, 사∼ 사랑해요!”

한달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 밤, 나는 눈물을 꾹 참으며 평소에 어머니께 전혀 하지 못한 말들을 진솔히 했다. 단 몇 초라도 그 짧은 시간의 흐름조차 그리 소중하게 느꼈던 때는 없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손을 꼬옥 잡고 나는 말했다. “어머니, 이제 나비처럼 훌훌 날아 하늘나라로 가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끄덕이셨다. 3주 전, 간암 말기 선고를 받은 터였다. 내가 조심스레 설명드리자, 뜻밖에도 “살 만큼 안 살았나” 하며 먼 산만 바라보셨다.

“내 죽거든 화장해서 고향 산소 울안에 훨훨 뿌려 다고.”

평소에도 몇 번 지나가듯 내뱉은 유언이었다. “추석 때마다 벌초도 몸서리 난다 아이가. 그라고 나도 새처럼 훌훌 자유롭게 날고 싶다.” 평소에 그런 말씀 들으면 벙어리가 되었다. 이번엔 달랐다.

“어머니 말씀대로 다 해드릴 테니 아무 걱정 마이소.” 고개를 끄덕이셨다. 볼에 흐르던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되었다. 어머니 손등의 피멍을 만지다가 어깨와 볼을 이리저리 느껴보았다. “한평생 우리 키우느라 고생만 하다가 이제 살 만하니 온몸에 골병이 다 들고 ….” 목이 메었다. 그날 밤 마을 이웃 분들이 다녀갔다. “이장님 어머니가 이렇게 편찮으신 줄 몰랐어요.”

의사는 그 이틀 전날 밤도 고비라 했다. 고향에서 형님, 형수, 조카, 질녀들이 모두 모였다. 어머니는 뜻밖에 생생했다. 모두 알아보고 말씀도 했다. 그 다음날은 우리 마을 고층아파트 반대 운동으로 기자회견과 시가행진이 계획된 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나와 마을을 위해 사흘을 더 참으신 거다. 나는 그날도 기자회견과 시가행진에 꿋꿋이 참여했다. 궂은 날씨에도 50여 마을 주민들이 비옷과 장화를 신고 길을 나섰고 나는 피켓과 머리띠를 나눠줬다. 아주머니들이 신은 빨간 장화는 기자들 눈에 확 띄었다. 대전충청 생명운동 활동가들도 함께 걸었다. 두 눈에 어머니 얼굴이 어른거렸다. “단디∼ 해라!”고 하셨다. 구호를 선창했다. 주민들은 내가 악을 쓰는 만큼 악을 썼다.

“주민무시 밀실행정 어디가든 찬밥대접!”


“아름다운 신안리를 아파트로 파괴말라!”

“아파트는 물러가고 대학촌을 창조하자!”

그렇게 긴장된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어머니가 계신 1인 병실로 달려갔다. 평소처럼 “인제 왔나∼” 하셨다. 말수는 적되, 그 속에 많은 정이 담겼다. “사랑한다”고 안 해도 온몸으로 자식 사랑을 토닥토닥 실천하는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들 아닌가.

그 다음날 오전은 ‘삶의 현실과 희망의 교육’이란 주제의 특강을 갔다. 전국의 뜻있는 교사들이 하는 자율연수다. 권력과 돈벌이를 위한 사다리 질서를 사람 냄새 나는 원탁형 질서로 바꾸는 과정이 희망이다.

어머니 곁을 떠나 하루는 마을 살리기 운동으로, 또 하루는 대안교육 운동으로 바빴던 건 결국 ‘더 크신 어머니’를 위한 것이다. 어머니는 날 낳아 키웠지만, 더 크신 어머니는 나를 관계 속 존재로 세웠다. 더 크신 어머니는 자연이요 마을이요 이웃이요 아이들이다. 어머니는 말 없이 한평생 그리 살았다.

떠나던 날 밤 불과 3시간 전까지 말씀 나누다, 어머니는 아내와 나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자는 잠에 조용히’ 가셨다. 지금도 어머니 생각에 눈물짓는 내게, “이제는 니 혼자도 충분히 산다. 더 크신 어머니를 위해 단디∼ 해라!” 하시는 듯하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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