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뽑혔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갈까? 기업인 출신인 이 후보는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심어주었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것이 경선 승리의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정책 차원에서는 지엽적인 ‘한반도 대운하’ 구상 외에 이명박 후보가 어떠한 경제철학을 지녔으며, 어떠한 경제공약을 내세우고 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경선 과정에서 도덕성 검증 공방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정책 논쟁은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도덕성과 리더십에 대한 검증 못지않게 정책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색깔’을 바꾼다고 하는데, 지금의 강경보수 성향을 수정하여 실용주의적인 중도우파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후보 수락 연설 모두에 수해를 당한 북한을 돕자는 말을 한 것도 이러한 생각을 반영한 것이리라. 앞으로 경제정책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궤도수정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후보가 지금까지 내세운 경제정책은 상상력과 철학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으며, 위험한 부분마저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경제철학은 한마디로 성장지상주의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극화 해소나 비정규직 문제 등 핵심적인 경제문제들도 성장률을 높여서 해결하겠다고 한다. 왜곡된 경제구조를 바로잡거나 시장기능을 합리화하기 위한 개혁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성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지극히 무리한 성장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10년 동안 7% 성장을 유지해서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7대 경제강국이 된다는 이른바 7-4-7 공약이 그것이다. 향후 10년간 잠재성장률은 5% 이내로 평가되는 데 비추어 이는 정말 비현실적인 공약(空約)이다. 과거에 한국이나 일본이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다가 성장률이 낮아진 것이나, 현재도 중국은 두 자릿수 성장을 하는 데 반해 미국이나 유럽의 성장률은 고작 2∼3%에 그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선진국이 될수록 노동력 증가율이 낮아지고, 투자의 성장 효과는 감소하며, 선진기술을 모방하면서 손쉽게 기술진보를 이루어낼 기회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7% 성장을 공약했을 때도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2017년까지 7% 성장을 한다는 것은 그보다 곱절은 더 무리다.
이런 무리한 성장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정책은 우려를 자아낸다. 대운하 등 종합국토개발 구상은 환경파괴 논란은 차치하고 성장정책으로서도 조금 시대착오적이다. 토건국가로 불리는 일본보다도 훨씬 토목건설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오히려 건설산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건설투자의 상당 부분을 사람에 대한 투자로 돌리는 일이다. 또 기업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인하해 세계 최고의 기업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하는데,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산분리 규제를 없애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법인세 대폭 인하 등 세금인하 공약은 여러 가지 내놓았는데 이에 따른 세수 보전대책이 없는 것도 문제다. 규제를 풀고 세금을 줄인다면 대부분 좋아한다. 그래서 대다수 정치인들은 입버릇처럼 이 얘기를 한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는 일개 정치인이 아니다. 현시점에서 차기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후보다. 경제정책도 좀더 책임 있고 실용적으로, 그리고 21세기적 발상으로 ‘색깔’을 바꿔주길 기대한다.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