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승 경제 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거침없이 치솟던 주가가 ‘서브프라임 충격’에 힘없이 무너지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무척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증권사들이 내놓았던 증시 전망이 장밋빛 낙관론 일색이었기 때문입니다.
되돌아 보면, 언론들도 마찬가지 잘못을 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충격파가 밀려오기 전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실상과 영향을 독자 여러분께 미리 예고하지 못한 점을 자책하는 게 아닙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하지 못한 예측을 한국의 신문에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증시 과열의 위험성을 경고해야 하는 언론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던 점은 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돌파하기 전까지는 저희도 신중한 보도 태도를 견지하려 애썼습니다. 코스피지수가 불과 석달 새 500 가까이 오르며 2000에 육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건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정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증시 과열 양상을 지적하고 투자자들에게 냉정해질 필요가 있음을 주문했습니다.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 주식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증권사 신용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빚내서 투자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경고성 기사도 여러 차례 내보냈습니다. 주위에서 “<한겨레> 주식 기사를 읽으면 돈을 못 번다”는 농담 섞인 핀잔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주가의 고속 질주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지난달 말 사상 처음으로 2000을 돌파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세 상승’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희도 흔들렸습니다. 결국 ‘주가 2000 시대’를 평가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위험에 대한 주의는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세상사 이치가 모두 그렇듯이, 주식 투자에도 양면이 있습니다. 고수익과 고위험입니다. ‘대박’을 낼 수도 있지만, ‘쪽박’을 찰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언론의 주가 보도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섣부른 주가 전망은 경계해야 할 대목입니다. 주가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의 실험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2000년 펀드매니저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1년간 모의 투자 게임을 해보았습니다. 원숭이에게 다트를 던져 투자 종목을 고르게 한 뒤 펀드매니저들이 고른 종목과 수익률을 비교했는데, 원숭이가 이겼다고 합니다.
언론의 속성상 주가 전망을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보도의 무게중심은 주식 투자의 위험성을 환기시키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투자 자세 등을 알리는 데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주가가 급등할 때는 언론의 냉정한 자세가 더욱 요구됩니다. 주가가 급락할 때도 시장의 불안이 필요 이상으로 증폭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게 언론의 올바른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우리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를 때는 시장보다 더 흥분하고 떨어질 때는 더 야단법석을 떱니다. 이번뿐만 아니라, 1994년에도 그랬고 2000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충격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 지금으로선 정확히 판단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증권사, 투자자, 언론 모두 교훈을 얻기에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안재승 경제 부문 편집장jsahn@hani.co.kr
안재승 경제 부문 편집장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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