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아프간 보도, 다시 기본을 생각하며 / 박중언

등록 2007-08-12 18:03

박중언 민족국제부문 국제뉴스팀장
박중언 민족국제부문 국제뉴스팀장
편집국에서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가 4주째로 접어들었습니다. 다행히 정부와 탈레반의 대면협상이 시작돼, 피랍자 일부가 풀려난다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렇지만 피랍 관련 보도를 맡고 있는 우리가 느끼는 참담함은 갈수록 더해갈 따름입니다. 한국 언론의 이번 사태 보도는 ‘총체적 부실’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병폐가 한꺼번에 노출됐습니다. <한겨레>도 예외가 아닙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게 ‘외신 받아쓰기’의 문제점입니다. <한겨레>는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사태 초기 인질 8명이 풀려났다는 외신의 오보를 그대로 전했다가 1면 사고(7월27일)를 통해 독자들에게 사과하는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음날이면 또다시 외신 받아적기에 목을 매는 처지여서 자괴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정부의 현지 취재 불허가 일차적 이유입니다. 한국인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도 한국 언론이 직접 취재는커녕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은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한국 기자들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일부 언론의 태도는 보도 윤리의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현지 통신원의 기사를 가명으로 싣는 것은 언론의 금도를 넘어선 무책임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중앙일보>가 가명 통신원 기사를 1면에 내보내기 시작한 며칠 뒤, 그 통신원이 <뉴스위크>와 <아사히신문>을 위해 일하는 사미 유사프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제3자를 거치긴 했지만 바로 그의 입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한발 더나가 이들 외국 유력 언론이 자사 가명 통신원의 기사를 확인 보도했다는 기사까지 실었습니다. 한사람이 보낸 같은 정보·메모로 작성한 기사를 마치 외신이 별도로 확인한 듯 보도하는 것은 명백한 조작입니다. 가명 보도가 횡행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게다가 <동아일보>도 가명 보도의 대열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자들의 현지 취재 허용을 촉구하는 기사와 가명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8월7일)를 내보냈습니다. 이에 대한 정부와 해당 신문사의 반응은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중앙일보> 쪽은 <한겨레> 기사에 대해 추정보도라며 얼버무렸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 기사가 잘못됐다면 그 통신원이 누군지를 밝히고 강력하게 항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조작 행위에 대한 사죄가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책임 있는 언론의 자세입니다.

지난해 8월 <아사히신문>에서 발생한 가짜 취재메모 사건이 생각납니다. 한 기자의 허위 메모를 토대로 작성한 기사가 문제되자 이 신문은 곧바로 조사·확인에 들어간 뒤, 1면에 사과문을 실었습니다. 해당 기자는 해고됐고, 도쿄본사 편집국장 등은 감봉·경질됐습니다. <조선일보>가 <한겨레>에 글을 보내는 전문가를 채가려던 시도를 중단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정부 또한 더이상 ‘기자도 납치 대상’이라는 주장만 되뇌면서 한국 언론의 현지 취재를 막아서는 안됩니다. 풀려난 피랍자에 대한 보도마저 외신을 인용해 전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아프간 입국을 허용해야 합니다.

물론 현지 취재만이 전부라는 뜻은 아닙니다. 기본 중의 기본일 뿐입니다. <한겨레>는 파키스탄의 탈레반 전문기자와 아프간 전문 한국인 프리랜서 등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태의 실체에 한발짝이라도 더 다가가려 애썼습니다. 우리 기자의 현지 취재가 보태지면 훨씬 정확하고 생생한 보도가 가능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박중언 민족국제부문 국제뉴스팀장park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그 폭동은 우발이 아니다…법원으로 간 ‘백골단’ 1.

그 폭동은 우발이 아니다…법원으로 간 ‘백골단’

대추리의 싸움…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에 맞서다 2.

대추리의 싸움…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에 맞서다

‘보수의 폭력’에 너무 관대한 나라 [박찬수 칼럼] 3.

‘보수의 폭력’에 너무 관대한 나라 [박찬수 칼럼]

[사설] 김성훈 경호차장 복귀, 범법 혐의자가 경호 지휘하나 4.

[사설] 김성훈 경호차장 복귀, 범법 혐의자가 경호 지휘하나

한국 정치 보는 미국의 세가지 시각 [문정인 칼럼] 5.

한국 정치 보는 미국의 세가지 시각 [문정인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