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고추장 단지가 열둘이라도 서방 하나 비위맞추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재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토지를 무슨 용도로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 역시 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비위를 맞추기 어렵다. 성종실록 1472년 기록을 보면, 장날에 모이는 사람이 기만에 이르는 것을 한탄하면서 밭 가는 일에는 힘쓰지 않고 장바닥에서 남녀가 어울려 술과 고기를 즐기는데, 본업인 농사를 버리고 보잘 것 없는 장사에 열중하는 것이니 마땅히 금지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땅의 용도도 변하기 마련이다. 현대사회에서 농지의 이러한 영화를 되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며, 현재 농촌 인구도 480만명 남짓하기에 농지로서의 생애를 마감하는 땅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토의 65%가 산지이고, 도시적 용지는 6.1%(1인당 36.4평)에 불과하며, 경사도 30도를 넘는 산지가 전체의 62.5%에 달해 쉽게 개발해서 이용할 수 있는 15도 이하의 산지는 2.8%에 불과한 현실에서는 쓸 만한 토지를 둘러싼 경쟁이 더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러던 차에 정부는 7월30일 경작환경이 좋지 않은 농지에 대중골프장을 짓는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해 국외 골프관광객이 64만5천명이며, 관련 경비로 연간 1조원 이상을 쓰는 상황이고, 미국·일본 등에 비해 골프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의 반값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중 골프장을 지어서 국외 골프소비를 국내로 돌린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농지는 사회지리학 개념으로는 사회적 휴경지에 해당한다. 실제로 쓸모가 없거나 황무지가 아니라 이용가치가 충분한 땅이지만 채산성이나 경작 노동력 부족, 생산물 수요의 변화와 같은 사회적 요인 때문에 놀리거나 방치한 땅이다. 이러한 사회적 휴경지는 도시용도로 전환을 기대하는 대도시 주변부나 경작환경이 아주 좋지 않은 두메에서 발생한다.
도시화율이 90%를 넘는 현실에서 농지의 운명을 대체하려는 골프장은 대도시 주변부의 치열한 토지이용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놀리는 땅이 발생하는 것은 해당 토지를 농지로 이용할 때 필요한 땅의 크기와 가격을 생산물의 가치가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9홀짜리 대중골프장도 10만여평의 땅을 필요로 하는 과소비형 토지이용 형태이기 때문에 반값 골프장으로 채산성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국외에 나가서까지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편익시설이 부족한 반값 대중 골프장에서 칠 것 같지는 않을 것이기에 국외 골프소비를 국내로 유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레저산업연구소의 분석을 보면, 2010년에는 골프장 수가 400∼450곳에 이를 것이고, 골프인구 증가세를 고려하여 2010년 연간 골프장 이용객 수를 2400만명 정도로 잡아도 350곳 안팎이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어 결국 골프장 50∼100곳이 남아돈다.
골프가 더는 특권층의 운동이 아니라 대중 운동으로 자리잡을 정도로 사회가 발전하고, 그래서 생활의 품질을 더욱 높이겠다는 정책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쓸 만한 땅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현실에서 땅의 용도는 사회적 수요를 우선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골프 참여자가 3.3% 수준인 현실을 생각할 때 골프는 가격 지급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운동으로 아직은 놔두고, 골프장의 가격 경쟁력 방책은 서비스나 경영방식 등 아무래도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국가의 획기적 지원을 담는 ‘골프장건설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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