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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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화한 이랜드 노사 충돌이 공권력 투입과 소통 부재로 더욱 악화하고 있다. 노조원들은 지난 20일 경찰의 강제 해산까지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선 21일, 뉴코아 강남점에선 13일 동안 점거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김경욱 위원장 등 이랜드 노조원 중 14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1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위원장 외 13명의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또 연행된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알몸 신검’을 받았고 변호사 조력권까지 박탈당했다. 강제해산 뒤 노동자들은 일종의 준법투쟁인 ‘매출 제로 운동’에 들어가 회사의 각성을 촉구했다. 재개된 협상은 소통 불능으로 끝났다. 29일 새벽엔 킴스클럽에서 “박 회장 직접 협상”을 요구하며 노조원들이 매장을 재점거했고, 31일 새벽엔 사상 초유로 공권력 재투입이 강행됐다.
이번 사태의 발화점은 7월1일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회사 쪽에서 차별시정과 정규직화 의무를 피하려 뉴코아 아울렛과 홈에버의 비정규직 750명을 해고하고 업무를 외주화한 일이다. 또 노사 협상 중에도 공권력 투입을 흘리며 뉴코아 강남점 출입문을 용접하는 등 진실한 소통 의지가 없었다.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다.
나는 여기서, 1987년 이후 한국 민주화가 20년 동안 진행됐다 하나 별로 내세울 게 없다고 느낀다. 특히 기업이나 시민이 노동 문제를 보는 시각은 여전히 독재 시절이다. 이런 시각의 변화 없이 ‘민주화’를 말하는 건 자기기만이다.
한국의 고도성장을 일컫는 ‘한강의 기적’과 비슷하게 ‘이랜드 신화’로 유명한 박성수 회장의 노조관은 걱정스럽다. 대부분 기업이 그렇듯 박 회장은 ‘노사가 한가족’이라 하면서도 ‘노조는 비성경적이고 반기업적’이라 본다. 한국의 대표 선수, ‘초일류기업’ 삼성의 노조관도 마찬가지. 곧 노사 평화가 유지되는 한 ‘노사는 한솥밥을 먹는 가족’이지만, 노사 갈등으로 노조가 설립되거나 노조가 단협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하는 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 결국 사용자는 노조 불인정, 유령 노조 설립, 교섭 기피, 부당 노동행위, 구사대 폭력, 노조 탈퇴공작, 블랙리스트, 고소고발, 손배 가압류 등 무리한 대응 일색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폼 나는’ 시혜적·구호적 지출엔 관대하면서도 ‘다소 불편한’ 사회정치적 의제의 정면 돌파는 거부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진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전 사무처장 말로, 대학 시절 한 선교단체에서 필리핀 대회를 준비하면서 비용 문제로 이랜드에 도움을 청하자 파격적 도움이 왔다고 한다. 그런데 평화통일 염원 대학생들의 국토대장정에 후원을 요청하니 ‘정치적 주제로 하는 모임엔 후원 불가’란 답이 왔다. 자선 사업은 ‘오케이’, 구조 변화는 ‘노’인 셈!
바로 이런 이중의식은 크게 보아 국가의 여러 제도적 행위에도 곧잘 보인다. 예컨대, 실업을 근본 예방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혁신보다 실업 보조금이나 취업 촉진 훈련비 지출에 열을 올린다. 노숙자 문제를 원천 해결하려고 삶의 구조와 산업 구조를 고치는 것보다 노숙자가 폭동을 안 일으킬 정도로 밥과 방을 주는 데 돈을 쓴다. 사회문제를 정면에서 돌파하기보다 그 본질을 계속 가리는 게 문제다.
이중의식을 극복하려면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고 노조와 성실히 대화하라. 마음의 문을 열고 노동자들 불만과 불안의 본질을 보라. ‘그런 식으론 한국 경제가 망할 것’이란 두려움도 숨기지 말고 정면돌파하자. 어떻게 해야 ‘모두 가족처럼’ 더불어 살 수 있을지.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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