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영화 프로듀서
삶의창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난 뒤 머리가 복잡했다. 광주민주화운동 이듬해인 81년에 대학에 들어간 나는 그때 몰래 돌던 지하유인물 <광주백서>를 읽고서 그날밤 오한과 함께 밤새 악몽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엔, 광주 시가전 장면에서 혈압이 오르고 머리가 솟구치지 않을까 싶어 내심 꺼려지기도 했다. 막상 영화를 볼 때 계엄군이 시민들을 학살하는 정점에서 클로즈업, 슬로모션과 함께 배경음악이 흐르는 순간, 이상하게도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면서 내 심장 박동 수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었다. 한번 더 놀란 건, 객석 곳곳에서 조금씩 새나오던 울음소리가 나와 정반대로 그 순간에 더 커지고 있음을 알고서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때 보니, 눈시울이 붉어진 관객들은 대체로 광주항쟁 이후에 태어난 듯한 젊은 층이었다. 아! 가공된 드라마와 스펙터클이 실제 사건을 직·간접으로 겪었던 이들에겐 그 사건을 남의 일처럼 보이게 하는 반면, 그걸 겪지 않은 이들에겐 더 큰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나…. 그렇게 생각했다가 이내 그것으론 부족하다 싶어졌다. 이 영화는 광주항쟁을 성찰하고 재해석하기보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고발하고 폭로하는 영화였다. 행복하게 살던 시민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계엄군에게 폭도로 몰려 학살당해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 구조도 거기에 맞춰 설계됐고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 이상하지 않은가. 1980년대 이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사건을 두고서, 27년이 지나 나온 영화가 고발과 폭로의 수준에 머문다는 게. 그럼 영화가 시대착오적인 걸까. 그것도 틀린 게,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와선 울고 분노하고, 착잡해 하며 극장을 나선다. 29일까지 개봉 첫 주말에 150만 명은 들 것 같다는 게 제작사쪽 관측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라 해도 이렇게 정서적으로 감응한다는 건, 그 사건의 응어리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말로 볼 수밖에 없다. 역사가 해결하지 못한 응어리를 두고서 영화가 성찰하고 재해석하긴 힘들다. 그럴 땐 고발하고 폭로하는 게 먹힌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럼 지금까지 실제 역사가 아무 것도 안 했던가. 전두환 전 대통령 등 80년 당시 신군부 실세들은 이미 95년 말에 구속돼 무기징역 등 중형이 확정됐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계엄군 발포 명령자를 밝혀내지 못했지만, 앞서 96년 검찰은 광주에서의 살상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씨에게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했고 대법원에서도 유죄로 인정했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한 셈이다. 97년 말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합의 아래 전씨를 사면, 석방한 일이 논란이 됐지만, 당시 여야 3당 모두 환영했고 언론과 시민단체의 반발도 드세지 않았다.
95∼97년 법조기자를 했던 나는 전씨 사면보다도, 95년 말 5·18특별법 제정 추진부터 시작된 일련의 일들에, 반성할 대목이 있지 않냐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95년 검찰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 등에게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여기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다른 관련자는 몰라도 전, 노씨 둘은 처벌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 뒤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그게 알려지자 청와대는 5·18 특별법 제정방침을 발표했고 전, 노씨 등의 고소인이었던 야당은 헌재에 낸 헌법소원 자체를 취하해버렸다.
전, 노씨뿐 아니라 관련자 모두를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으로 가자는 것이었지만, 5·18특별법은 소급입법으로 위헌이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그 법이 헌재에 다시 갔을 때 헌재는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의 정족수가 부족하므로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여러 가정과 경우의 수를 퍼즐처럼 엮어놓은 그 기이한 결정문은 기사로 쓰기에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헌정 침해의 추악한 과거를 청산하게 할 역사적 문건임에도,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할 수 있는 경구 하나 인용할 수 없었다.
위법은 아니라도 편법이 있었던 셈인데, 정치권이든 시민단체든 급하게 빨리 해치우려고 서두는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도 했던 생각이지만, 정석대로 헌정 침해 사범에 대해 시효적용을 달리 하는 개헌안을 마련해 국민투표로 갔으면 어땠을까. 결과가 어떨지를 떠나, 투표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토론하는 그 과정에서 과거 역사가 재정리되고, 광주의 명예가 살고, 민주주의가 재교육되지 않았을까. 너무 이상적인 건가. 역사는 가정하지 말라고 했다.
민주주의란 결과보다 절차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 말이 문민정부 이후에도 또다른 논리로 경시돼 온 건 아닐까. 쉽게 빨리 가고자 한 결과가, 지금 와서 보면 할 건 다 했는데 한 게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새로 할 것도 없게 돼버린 상태에서 영화는 그 역사를 다시 고발하고 분노한다. 지금 충무로에선 광주의 피해자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이야기가 영화화되고 있다.
임범/영화 프로듀서
임범/영화 프로듀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