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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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프로그램 진행 덕분에 유명인사들과 인터뷰할 기회가 좀 있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프랑스의 지성이라 불리는 자크 아탈리도, 신흥 시장 경제에 정통한 투자자 반 악트마엘도 답이 한결같았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모두 교육개혁을 얘기했다. 주입식 교육에서 창의성 위주의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이전투구와 이합집산은 있으되 치열한 정책논쟁은 온데간데없으니 답답하다. 한국 교육, 확 바꾸는 방법은 없을까?
교육개혁을 말할 때 대학입시는 지엽말단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부정직한 의견이다. 대학입시가 학교교육을 왜곡하는 주범이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시험공부 하느라고 학생들의 고급 지적 능력은 퇴화되어 간다. 아무리 봐도 요즘 학생들 과거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훨씬 풍부한 직·간접 경험도 하면서 공부도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소위 일류대학 진학자들도 실력이 과거보다 못하다고 한다. 적어도 사교육비 지출을 기준으로 봤을 때 교육투자가 엄청 늘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다는 말이다. 대학입시가 주입식 교육을 낳고, 주입식 교육이 학력 저하를 낳는다.
“아인슈타인도 조기에 영재교육을 받았다면 평범한 사람에 그쳤을 겁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마치에이 콜바스 전 폴란드 물리학회장의 말이다. 그는 “타고난 천재도 일찍부터 강도 높게 영재교육을 시키면 교육내용이 주입식으로 변질돼 오히려 지적 호기심을 잃어버리고 … 선행학습 위주의 훈련은 창의적 사고를 가로막고 다른 영재성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조기교육, 영재교육 열풍에 대해 쓴소리를 한 것이지만, 이 말은 한국 교육 전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주입식 교육으로 지적 호기심과 창의적 사고와 ‘다른’ 영재성을 죽이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니까 말이다.
최근에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울화가 치밀었다. 무슨 왕 때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일은 무슨 왕 때 있었고 … 도대체 이런 걸 외워서 어디다 쓸 것인가?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내신반영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식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내신이 중시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객관적인 평가를 중시하는 사지선다형이나 단답형 시험은 불가피하게 단편적인 지식 위주로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입식 교육을 부추기게 된다. 그래서 얼마 전 영국 교육협회는 16살 이전에는 아예 시험을 없애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기초적인 교육에서 시험을 통해 창의력이나 비판적 사고력 등 고급역량을 측정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다시 도입하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평가를 고급화해야 한다. 내신이냐 수능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진짜 실력을 측정하는 평가, 그래서 진짜 실력을 고취하도록 유도하는 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몇 가지 획기적인 방안들을 놓고 사회적인 토론이 벌어져야 한다. 많은 비용을 들이고 객관성을 약간 희생하면서라도 수능을 완전 논술형으로 바꾸는 것이 한 가지 방안이다. 아니면 좀 더 과격하게 아예 대학입시를 없애버리고 평가를 좀 미루면 어떨까? 어차피 궁극적 평가는 인생의 성공 아니겠는가? 이것도 저것도 다 못하겠다면 대학들이 알아서 하라고 완전히 자율화해 버리는 것도, 그래서 일시적인 혼란기를 거치더라도 자유경쟁 속에서 좋은 학생선발 방법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차라리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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