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변호사
시민편집인칼럼
파충류에는 슬픔이나 동정심 같은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없다. 사람들 중에도 ‘사이코패스’라 해서 변연계가 없는 이들이 일부 있다. 이들은 아무런 죄의식이나 감정 없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사형 폐지론자들도 이들을 고려해 감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제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최근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갈등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런 감정이 없는 돈과 감정이 있는 사람 사이의 평행선이란 생각이 든다.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는 548만명, 전체 노동자의 37% 가량 된다. 지난해와 비교해 1년새 34만명이 늘어난 수치다.
지난 7월1일 발효된 비정규직 보호법에서는 2년 이상 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올려 주도록 했다. <한겨레> 7월19일치 기사를 보면, 조사 대상 기업 198곳 가운데 40%가 2년마다 새 사람으로 바꾸겠다고 하고, 직군을 분리해서 무기계약으로 계속 고용하겠다는 곳이 41%, 완전 정규직화하겠다는 곳이 18%로 나왔다. 기업의 이런 대응은 철저한 돈의 논리다. 여유가 있는 곳은 정규직화이고 그렇지 못한 곳은 2년 이내 채용과 해고의 반복이다. 신세계 계열의 이마트가 매장 직원들을 전원 정규직화한 것은 그럴 여유가 있어서다. 이랜드 문제가 더 크게 불거진 것은 이랜드 대주주가 교회 주일헌금으로 130억원을 낼 정도인데 왜 비정규직을 모두 계약해지 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기업주들은 정규직 전환 기간을 3년으로, 민주노총 등은 1년을 주장하다 그 중간인 2년으로 낙착되었다. 기업주들은 3년은 일을 시켜야 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 채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고급 비정규직인 프리랜서들을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은 처음부터 고도의 전문성이나 숙련도가 요구되는 직종에는 해당 사항이 거의 없다. 기업 처지에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공연히 정규직화해서 매년 월급 올려주고 마음대로 그만두게 할 수 없는 불편과 비효율을 피하고 싶어한다. 이때 기업이란 울고 웃고 슬퍼하고 동정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 ‘돈’과 다름없다.
‘이윤을 못 내면 기업은 망한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도 있다’는 기업의 논리는 그 자체로 그럴 법하다. 외환 위기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 역시 보수 쪽에선 ‘잃어버린 10년’이니 좌파 정부니 하는 딱지를 붙였지만 근본적으로 이윤과 효율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편을 들었다.
<한겨레>가 지난 한 달여 거의 매일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점에서 ‘따뜻한 마음’은 읽을 수 있겠다. 하지만 더욱 적극적인 대안 제시가 아쉽다. 대선주자들에게 이 문제를 물은 것도 좀더 구체적이었으면 좋았겠다. ‘동정심 없는 돈이 나쁘다’에서 더 나아가 ‘돈’ 쪽에서 하는 이야기도 소개해 주고, 그에 대해 구체적인 반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더욱 설득력이 있고 ‘돈’ 쪽과도 향후 소통이 될 것이다. 당장 근본적인 두 가지 문제가 떠오른다. 우리 사회 전체 일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일할 사람은 많다. 정규직으로 바꾸어 주어 그 자리가 독점되면 나머지는 영영 일자리가 없어야 하나, 아니면 정해진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라도 서로 돌아가며 일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고용 안정과 차별 해소를 동시에 꾀하려 하면 기업들은 아예 고용을 기피한다. 이런 문제들을 풀기 위해 북유럽이나 아일랜드 등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대타협’ 같은 방식에 대한 각 부문의 진지한 고민을 좀더 다루었으면 싶다.
김형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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