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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파르헤지아 / 고명섭

등록 2007-07-22 17:57

고명섭 책·지성팀장
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파르헤지아’(parrhesia)는 생의 말기에 미셸 푸코(1926~1984)가 혼신의 힘으로 탐험했던 철학적 주제였다. 에이즈가 온몸을 난타하던 때에 푸코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마지막 강의 제목을 ‘진실의 용기’라고 붙였다. ‘진실의 용기’란 말하자면, 파르헤지아의 가장 간명한 번역어다. 푸코는 고대 그리스의 현인들에게서 파르헤지아라는 용어를 끌어왔다. 푸코의 설명을 따르면, 고대 현인들에게 파르헤지아는 자기 자신을 윤리적 주체로 만드는 핵심적인 실천 행위 가운데 하나였다.

파르헤지아를 풀어쓰면, ‘솔직하게 숨김없이 진실 말하기’를 뜻하지만,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다 파르헤지아인 것은 아니다. 파르헤지아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위험을 불러올 때에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용기야말로 파르헤지아를 파르헤지아답게 만들어주는 미덕이다. “파르헤지아 속에서 화자는 (궤변으로) 설득하기가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기를 선택하며, 거짓이나 침묵이 아니라 진실을 선택하고, 생명과 안전이 아니라 죽음의 위험을 선택하며, 아첨이 아니라 비판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도덕적 의무를 선택한다.”

파르헤지아를 행하는 사람을 파르헤지아스트라 한다. “파르헤지아스트는 생각을 말할 때 신실하며, 그의 의견은 진실이다. 그는 그가 참이라고 아는 것을 말한다.” 푸코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인에게서 파르헤지아스트의 완벽한 사례를 보았다. 그러나 그 시대의 정치인에게도 파르헤지아의 미덕은 요청됐다. 만약 파르헤지아스트가 정치영역에서 설 자리를 잃고 궤변가나 아첨꾼이 그 자리를 채운다면, 정치는 결국 껍데기만 남게 된다. 진실을 감추고 침묵 뒤에 숨어 위기를 피해 가는 것은 파르헤지아가 아니다.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 파르헤지아를 찾는 것은 연목구어인가.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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