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삶의창
진구 아재가 병원에 오셨다. ‘아재’는 우리 당숙의 친구가 되시는지라 나는 그분을 그냥 진구 아재라고 불렀다. 아재는 형편이 좀 어려우시다. 원래는 인근 주물공장에 다니셨는데, 워낙 무거운 쇳덩이를 많이 들다보니 척추관 협착증이라는 병에 걸리셨다. 아재는 그후 직장을 그만두고 신시장 인근에 작은 철물점을 하나 열었는데 벌이는 도통 시원치가 않다.
“아재, 어디 아파서 오셨어요?” 하는 내 질문에 “응. 혈압약도 다 떨어졌고, 온몸이 쑤셔서 몸살이 났나 싶기도 하고 ….”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목을 들여다보니 편도에 허연 곱이 끼어 있었다. ‘편도농양’이었다. “아재, 이거 좀 심각해요. 물 많이 마시고 푹 쉬어야 해요. 최근에 과로한 적 있어요?” 내가 걱정스럽게 되묻자, “응. 재호 때문에 좀 신경을 썼더니 …” 하시며 한숨을 푹 내쉬셨다.
“재호가 왜요? 걔 군대 가지 않았어요?” 재호는 내가 알기로 입대한 지가 벌써 일 년은 넘었다. 그런데 재호 때문이라니 …. “왜요, 군에서 무슨 문제가 있어요?” 내가 재차 물어도 긴 한숨만 토하던 아재 눈에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재호 수술했어.” 군에 있는 녀석이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내가 다시 물었다. “수술요? 왜요, 어디 다쳤어요?” 그제서야 이 사람좋은 양반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재호가 군에서 머리가 아파서 의무실에 갔더니 군의관이 대학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하더라는 거야. 그래서 재호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갔더니, 귀에 종양이 생겼대. ‘청신경종’이란 병인데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해서 수술을 했어. 그런데 수술을 해 보니 이미 많이 커져서 다 제거를 할 수가 없었다고 앞으로도 수술을 몇 번 더해야 할지 모른다고 하는데 ….” 아재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얼마나 속을 끓였을까. 마음이 저려왔다. “그래서요? 그래서 의병 제대는 시켰어요? 일단 제대시키고 치료에 전념해야죠.” 그런데 아재의 입에서 너무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제대를 안 시켜야 하는데, 그게 제대가 되면 큰일인데 ….” 아들이 아픈데 의병제대가 큰일이라니. 너무 뜻밖이었다. “그래도 군인이라서 치료비가 얼마간 나와. 그런데 제대하면 그게 안 나와. 군생활하고 상관없는 병이라서 제대하면 그 길로 끝이래. 그래서 제대를 안 해야 하는데 ….”
세상 사람들은 금지옥엽 외아들이 병이 들면 당장 제대시켜 곁에 데려오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진구 아재의 형편은 오히려 그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앞으로 얼마가 더 들지도 모르는 치료비. 아마 아재네 철물점과 집을 모두 팔아도 감당하기 어려울지 몰랐다. 아재는 자신의 무력함을 절절히 원망했다. 남 다하는 공부도 제대로 못시키고, 아픈 자식 치료비가 없어서 병든 아들을 제대조차 못 시키는 가난한 아버지의 마음은 피를 토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잘살고 못사는 거야 자기 책임이라지만, 그래도 자식이 죽게 생겼을 때, 돈이 없어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는 없어야 그래도 이 세상이 사람사는 세상이라 하지 않겠는가.
소매깃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아재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많이 미안했다. 무엇이 미안한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냥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아재, 정말 미안해요.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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