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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쩐의 전쟁>과 법치 / 임범

등록 2007-07-06 18:03수정 2007-07-06 19:02

임범/영화 프로듀서
임범/영화 프로듀서
삶의창
지난 5일 마지막 회를 방영한 드라마 <쩐의 전쟁>의 결말을 두고 인터넷에서 좋다, 나쁘다 말들이 많다. 나에겐 그 결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시청률이 높은데도 주변에서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많이 시청하고 있어서 왜일까 궁금했는데, 결말을 보니 한 가지 단서가 잡혔다. 이 드라마의 구성은 고전적인 누아르 영화와 닮은 데가 있는 듯했다.

돈 때문에 부모를 잃은 주인공이, 돈으로 세상에 복수하겠다며 아무도 믿지 않고 사랑도 내치면서 돈만 좇는다. 그러나 사채시장에서 위치가 올라갈수록 마음이 약해진다. 정상에 올라가선 서민금고를 차리고 결혼까지 하려 한다. 불법과 야만의 세계에서 합법적인 체제 속으로 옮겨 가려는 순간, 예기치 않은 죽음을 당한다. 비정한 세상은 그를 제거하고, 그의 꿈은 실현되지 못한다. 주인공이 죽어 가는 모습을 비출 때, 드라마는 아메리칸 드림의 파탄을 말하던 수십년 전 할리우드 영화들의 엔딩과 같은 효과를 의도하는 것처럼 읽혔다.

여기서 그 의도가 성공했느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 나는 이 드라마가 불러온 사회적 파장을 짚어 보고 싶다. <쩐의 전쟁>은 사채시장을 아무도 믿지 못하는 비정한 공간으로 규정하면서, 그곳에서 법치를 배제시켰다. 드라마 안에선 협박, 폭행, 신체포기 각서 같은 불법적 수단이 자주 등장하지만 경찰은 나오지 않고, 아무도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 이게 드라마 밖 현실 사회에서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불러왔다.

한 검사는 이 드라마가 대한민국을 ‘무법천지’로 묘사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불법은 용납될 수 없을 것”이라고 검찰 소식지에 썼다. 드라마 속의 공갈, 협박 등을 처벌하는 법조항이 마련돼 있으니 신고하면 된다는 취지이다. 반면 민주노동당이 낸 ‘<쩐의 전쟁>에 경찰은 어디 갔나’라는 보도자료에 따르면 현실이 드라마 못지않다. 드라마에선 한 피해자가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자 사채업자가 물러섰지만, 현실에서 경찰은 “피해자인 채무자에게 합의부터 종용하고, 불성실 수사로 일관한다”며 당에서 수집한 실제 사례들을 예시했다.

어느 쪽이 옳으냐를 따지기에 앞서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법무부든 이런 드라마가 화제가 될 때 ‘불법 추심행위 신고센터’ 같은 것을 만들 법한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어떤 범죄행위가 이슈가 되면 바로 합동수사본부나 특별수사본부를 차렸다. 국민들이 법치에 공백감을 느낄 것 같으면, 그때마다 국가가 이런 식으로 대응을 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의 법치는 권력의 정치행위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대증요법에 그치는 경우도 잦았다.

90년대 후반부터 이런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법치가 곧 권력행위이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시민사회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게 요즘인 듯하다. 한화그룹 회장 폭행사건은 억울한 일을 법에 호소하지 않고 사형(私刑)으로 해결한 것인데, 죄형법정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게 바로 사형이다. 이를 두고 법무부 장관이 ‘아버지의 정’을 빌어 옹호하는 말을 할 때 법치는 아직 멀게 느껴졌다가,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자 그래도 좋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법에 호소하지 않고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불법 추심행위도 사형과 마찬가지다. 피해자의 신고의식을 종용하는 검사의 글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지금 상황에서 ‘불법 추심행위 신고센터’ 같은 걸 만든다고 할 때, 이걸 권력행위로 보는 사람이 있을까.

임범/영화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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