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변호사
시민편집인칼럼
홍씨 성을 가진 이를 안다. 그는 북한산 자락 빨랫골에서 세탁소를 한다. 보증금이며 시설비 모두 합쳐야 이천만원짜리 가게다. 한 달 수입 백수십만원에 중학교, 초등학교 아이 둘과 부부의 삶이 걸려 있다. 치킨이나 피자는 엄마가 큰맘 먹어야 두 달에 한 번이나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그런 그가 엊그제 <한겨레>를 정기구독하기로 했다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 정치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저 고향이 경상도라 박정희·김영삼에게 심정적으로 끌리는 이다. 한겨레도 누가 권유해서 우연히 보게 되었을 뿐 성격이 어떤 신문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음날부터 홍씨의 눈으로 신문을 보게 되었다. 걱정과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가 한겨레를 계속 보려 할까?
그의 눈으로 매일 신문을 뒤적여 보니 우선 너무 어렵다. 한겨레는 의식화되어 있는 지식인의 눈높이다. 홍씨 같은 이들에게 웬만한 기사는 읽기가 너무 힘들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가 다니던 영세 봉제공장이 왜 망했는지, 단골손님인 재래시장 상인들이 대형마트에 어떻게 밀려나고 있는지, 중학생 아들이 강남의 같은 또래와 경쟁에서 처질 수밖에 없는 원인은 무엇인지. <한겨레>에서 매일 다루다시피 하는 문제들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런 기사들을 그의 눈높이에 맞추어 더욱 쉽고 다양한 형식으로 다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포츠, 문화, 그리고 광고 정도가 한겨레 독자 홍씨 눈에 들어왔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나마 ‘재미’가 보이는 역시 외우기 어려운 와인 이름이며, 최신 퓨전요리며, 세련된 여행 이야기뿐이니 동네 북경반점에서 짬뽕시켜 먹는 것이 최대의 호사인 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한겨레의 독자는 누구이며 어떤 바람으로 어떤 이들이 만드는가. 한겨레가 약자, 소외된 이, 서민을 위한 신문임을 내세우지만, 사실 보는 독자들도 만드는 기자들도 나름대로 수준 높은 지성인 부류가 아닌가. 정작 배운 것도 물려받은 재산이나 머리도 없는 서민들은 보기 어렵고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신문이라면 지식인인 한겨레의 독자와 기자가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홍보전략이나 내거는 구호 등 선거운동을 정확히 중학생 수준에 맞추어야 한단다. 물론 신문은 선거와는 다르지만 한겨레가 우연히 구독을 시작한 홍씨 같은 이들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 이런 발상을 권해 본다. 취재 분야를 고르고 기사·칼럼·논설을 쓸 때 주변에 있는 홍씨 같은 ‘서민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가 독자라고 생각해 보자. 그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트로트가수 박현빈의 노래에서부터 문화면을 시작하면 어떤가. “곤드레 만드레 나는 취해 버렸어/ 너의 사랑의 향기 속에 빠져 버렸어/ 가진 것은 없다지만 사랑으로 감싸줄게/ 비 오는 날 흐린 날도 햇살처럼 안아줄게” 기존의 한겨레 독자와 기자들이라면 사랑에 관해 아마 이런 시를 좋아할 것이다. “천 길 땅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서정주의 ‘춘향유문’식 ‘고급’ 사랑이나 박현빈의 ‘비 오는 날 흐린 날도 햇살처럼 안아준다’는 ‘통속적인 사랑’이나 두루 다룰 수 있는 <한겨레>를 기대해 본다.
김형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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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과 독자권익위원회는 명예훼손 등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예방과 자율적 구제를 위해 일하고, 시민을 대표해 신문제작에 관한 의견을 전달하는 창구입니다. 한겨레 편집방향 등에 대한 따끔한 비판도 시민편집인의 몫입니다. 한겨레의 정확하지 못한 기사로 불편을 겪으셨거나, 한겨레 편집방향 등에 의견을 전하실 분은 연락해 주십시오. 시민편집인과 독자권익위원회가 여러분의 입과 손발이 되겠습니다. 또 보내주신 의견 가운데 선정된 내용은 시민편집인이 직접 답변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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