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칼럼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많은 사람들이 정보기관이나 경찰에서 고문을 당했다. 김근태는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했다. 그 때문에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을 당했다. 1985년 미주 한국일보 기자가 부인 인재근씨에게 고문 사실을 전해듣고 가수 이미자의 노래 테이프 중간에 증언을 녹음해 미국으로 가지고 갔다. 테이프는 미국 언론과 인권단체에 전달됐다. 독재정권의 전기고문은 세계의 뉴스가 됐다.
시대가 바뀌어 수사기관의 고문은 사라졌다. 전기고문은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일 뿐일까? 아니다. 과거는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 김근태는 지금도 고문 후유증을 앓는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라지만, 오른쪽 목과 어깨의 통증으로 고생이 심하다. 그는 고개를 자연스럽게 돌리지 못한다.
김근태가 대선 출마를 포기한 데는 건강 탓도 있는 것 같다고 누군가 귀띔을 했다. 며칠 전 의원회관으로 찾아가 그를 만났다.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중요한 원인은 아니지만 관련이 좀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왈칵 슬픔이 밀려들었다. 가해자들은 멀쩡한데 피해자가 과거의 상처 때문에 또다시 손해를 보는 그런 세상은 정의롭지 못하다.
정치인들의 대선 출마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범여권에서만 10명이 넘는다. 그런데 김근태는 접었다. 그는 “역량이 부족하고 상황이 절박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포기 선언 뒤 김근태는 ‘대통합’과 후보연석회의를 위해 뛰고 있다. 발바닥에 불이 날 지경이다.
‘요즘 힘을 좀 받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당을 만드는 일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각 정당 대표들에게 통합을 호소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통합이 안 될 경우 후보 단일화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내년 총선 때문에 어느 정당도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1987년 대선을 앞둔 야당의 분열은 김영삼·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실패 탓도 있지만, 총선이 다음해 4월로 임박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결국 ‘대통합신당’이 분수령이라는 얘기다. 그는 특히 통합민주당과 반드시 합쳐야 한다고 했다.
그가 대선주자를 포기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뭘까? 그는 민주세력이 다시한번 집권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 가지를 이유로 들었다.
첫째, 국민들의 분열이 심각하다. 양극화 때문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과 비전은 민주세력이 갖고 있다. 둘째, 추가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한다. ‘승자독식’ 철학을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은 할 수 없다. 셋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임기 안에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민주세력이 집권해야 한다.
논리정연했다. 그 과정에서 김근태 개인에게 돌아오는 정치적 이익은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민주주의 발전과 정착을 위해 평생을 싸웠다. 87년 6월 항쟁은 절반의 승리였다.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발전해 열매맺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러면 내 가슴에도 큰 자부심으로 남을 것 같다.” 70~80년대 암울한 시절 김근태 같은 이들이 목숨을 건 덕분에 민주화는 앞당겨졌다. 민주화의 혜택은 국민들에게 고루 돌아갔다. 민주화가 없었다면 정보화 시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는 퇴보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김근태에게 빚을 졌다. 그런 그가 대선 주자를 포기하고 민주세력 집권론을 외치고 있다. 그의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나는 민주주의 발전과 정착을 위해 평생을 싸웠다. 87년 6월 항쟁은 절반의 승리였다.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발전해 열매맺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러면 내 가슴에도 큰 자부심으로 남을 것 같다.” 70~80년대 암울한 시절 김근태 같은 이들이 목숨을 건 덕분에 민주화는 앞당겨졌다. 민주화의 혜택은 국민들에게 고루 돌아갔다. 민주화가 없었다면 정보화 시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는 퇴보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김근태에게 빚을 졌다. 그런 그가 대선 주자를 포기하고 민주세력 집권론을 외치고 있다. 그의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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