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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엔지오와 엠비에이 / 이원재

등록 2007-06-20 18:01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나라살림가족살림
미국 경영대학원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날, 학교 쪽으로부터 전자우편 한 통이 날아왔다. “방학 동안 비영리 조직에서 인턴으로 일할 학생은 미리 신청하면 임금의 절반을 지원할 예정이니 신청서를 작성해 보내주세요.”

2년짜리 엠비에이 과정 재학생에게 여름 인턴은 좋은 취업 탐색 기회이기도 하고, 비싼 학비를 마련할 수 있는 돈벌이 기회이기도 하다. 많은 학생들이 기업에서 인턴십 경험을 쌓으면서, 방학 기간에 1만∼2만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여 학비를 충당한다. 문제는 인턴십 경험을 쌓으며 기여도 하고 싶은데, 보수를 넉넉히 줄 수 없는 곳을 만날 때 생긴다. 비영리 민간기구, 곧 비정부기구(NGO)가 그 대표적 사례다.

많은 경영대학원 학생들이 엔지오에서 일하면서 기업에서 찾을 수 없는 가치를 찾는 동시에 넓은 시야를 갖고 일을 해 보고 싶어한다. 또 엔지오들은 조직의 성장을 위해 경영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학생들을 데려다 함께 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높은 임금을 주기 어려운 엔지오의 사정과 학비 보충이 필요한 학생의 사정 탓에, 엠비에이와 엔지오가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제도 중 하나가 엔지오 인턴십 지원 프로그램이다. 경영 전문성이 엔지오로 유입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인턴십 인건비 일부를 학교나 외부 기부자가 지원해 주는 것이다. 인턴십뿐 아니다. 엠비에이가 졸업 뒤 비영리 조직에 취업할 때 학자금을 탕감해 주거나 인건비를 주는 방법으로 지원하는 학교도 있다. 하버드, 스탠퍼드, 콜럼비아 등 유수한 대학의 경영대학원들이 그렇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영리 조직에 취업한 엠비에이들은 마케팅, 모금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며 해당 조직의 성장을 돕는다.

한편, 엠비에이 과정이 개설된 대학 쪽에서도 비영리 조직 출신을 반긴다. 주로 경영 사례에 대한 토론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엠비에이 과정은 직장 경력이 최소한 3년 이상은 있어야 학생으로 선발하는데, 아무래도 영리기업 출신이 관심을 많이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학교 쪽에서는 학생 경력이 다양할수록 토론이 다채로워지고 풍부해진다고 생각하므로, 비영리 조직 출신을 적극적으로 반기는 편이다. 그래서 듀크대학 같은 곳은 아예 엔지오 출신 입학자 중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사회부문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고액의 장학금을 따로 주기도 한다.

나도 최근 비영리 조직에서 경영과 관련된 교육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이 몇차례 있었다. 한국의 비영리 단체에서도 경영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경영학이 원래 속도와 크기만 중시하는 ‘효율성’(efficiency)이 아니라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중시하는 ‘효과성’(effectiveness)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다.

단체나 조직에 인력 지식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공급이 받쳐주지 못하면, 조직 수준이 정체 또는 퇴보하게 된다. 엔지오와 엠비에이. 과거에는 어색해 보였을지 모르는 두 단어를 만나게 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마침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고급 경영전문가 양성을 위해 경영전문대학원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새롭게 진용을 갖춰 출발하는 경영전문대학원에서 비영리 단체 인재를 널리 선발하고, 또 양성된 경영전문가들이 비영리 부문으로도 유입될 수 있는 지원체제를 꾸리면 어떨까. 돈을 버는 조직과 가치를 실현하는 조직 사이를 잇는 멋진 구름다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세계 유수 경영대학원에서도 다들 시행하는 일이라니 하는 말이다.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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